올 추석 연휴는 임시공휴일과 개천절까지 이어지는 6일간의 황금연휴이다.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되었던 코로나 팬데믹 종식 이후 맞는 추석 명절이다 보니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린 시절 추석은 신나고 즐거운 날이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기는 음식들과 사촌들과 뛰어놀던 시간은 풍성하고 흥겨웠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성묘길은 소풍길 같았고 친지들의 방문도 마음 들뜨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세상은 명절의 즐거움보다는 명절의 스트레스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여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명절이지만 가족들의 만남이 오히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최근 한 종합교육기관에서 20~40대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니 추석이 부담스러운 이유 1위가 ‘가족과 세대 간 갈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이어서 ‘이동 시간과 친척집 방문으로 인한 시간적 부담’, ‘장시간 운전 또는 음식 장만 등 육체적 노동’을 추석이 부담스러운 이유로 꼽았다. 명절 스트레스가 육체적인 힘듦보다도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한 정신적인 힘듦에서 더 많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절날에 생기는 가족 간의 갈등은 소통의 미숙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모여 번잡한 것도 적응하기 힘든데 서로 다른 세대와 배경에서 온 가족 구성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상호작용을 해야 할지 모르다 보니 쓸데없는 말로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사실 평소 왕래도 없고 소통의 기회도 없었던 사람들이 명절에 만나 할 얘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만남의 어색함을 없애고 나름의 소통을 위해 한다는 말들이 취업, 결혼, 대학 입시, 자녀 계획 같은 신상에 관한 이야기이고 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하는 충고와 조언이다.
그러나 윗세대의 조언은 아랫세대에게는 명절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잔소리이자 원치 않는 조언으로 여겨지기가 십상이다.
오래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MC의 질문에 답한 한 초등학생의 말에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잔소리는 짜증 나고 조언은 더 기분 나빠요.”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조언은 잔소리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이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
코치가 고객과의 코칭 대화에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 것이다. 고객을 위해 조언하고 싶을 때는 반드시 고객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말씀을 듣다 보니 고객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생각이 떠오르는데 제가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고객이 원한다고 할 때 비로소 조심스럽게 코치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고객이 조언을 받아들이겠다는 자발적 마음이 들 때 고객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조언은 듣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이며 조언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한다.
대화는 상대가 있는 상호적인 의사소통의 과정이다. 의사소통의 영어 단어 communication은 라틴어 communis에서 나왔다. com은 ‘함께’, munis는 ‘공적인 일’이란 뜻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는 행위이다.
일방적인 것이 아닌 함께 하며 공통의 것을 찾아가는 일련의 노력을 말한다. 즉 두 사람이 서로의 정보, 지식, 경험, 사상, 신념, 감정, 욕구 등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특정 순간에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유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삶을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을까? 바로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상대방 중심의 사고로 전환하려고 노력할 때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 삶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와 대화가 안 되고 갈등이 생긴다는 건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인간의 모든 삶은 다 다르고 그 나름대로 의미 있고 소중하다. 내 삶이 의미 있고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삶도 존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삶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갈등이 아닌 사랑의 대화가 가능하다.
명절의 풍성함에 음식뿐 아니라 대화의 풍성함도 함께 하면 좋겠다. ‘짜증 나는 잔소리’도 ‘더 기분 나쁜 조언’도 아닌 서로 듣고 싶은 배려와 사랑의 말로 함께 즐겁고 풍성한 명절을 기대해 본다.
◇강영은 (KPC코치⋅MBC 아나운서)
1985년 MBC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우리가족 만세'의 TV 프로그램 MC를 시작으로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MC, 라디오 뉴스 앵커로 활동했고 여성 스포츠 중계캐스터로 기계체조, 리듬체조, 에어로빅, 피겨스케이팅, 다이빙,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등을 중계했다. '건강한 아침 강영은입니다' 라디오 MC를 끝으로 1991년 방송현업을 떠나 경영부문으로 업무를 전환했다. MBC아카데미 본부장, 기획사업부장, 문화사업부장, 문화사업센터장을 거쳤고 MBC의 사회공헌사업과 MBC꿈나무축구재단 운영업무를 마지막으로 올해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학사, 서강대학교 언론정보학 석사와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이며 현재 한국코치협회의 KAC, KPC 인증코치로 단국코칭센터 대표코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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