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밸류체인은 종자, 즉 모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파이토리서치는 이렇게 중요한 육묘 산업을 기술로 혁신하는 대체 불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겠습니다.”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연준 대표는 학생이면서 파이토리서치라는 식물조직배양 스타트업 대표이기도 하다. 식물조직배양 경력만 햇수로 벌써 6년차다. 젊은 나이지만 화려한 이력만큼 일에 대한 포부와 열정도 남다르다. 김연준 대표는 차세대 조직배양 생산 솔루션을 통한 국내 종자생산 인프라 분야의 혁신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재배 산업의 미래를 만드는 육묘 분야의 퍼스트 무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김연준 대표. 쿠키뉴스가 지난 26일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파이토리서치 기업명이 특이하다. 어떤 의미인가.
기업명은 식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이토(Phyto)와 연구인 리서치(Research)를 합친 말이다. ‘본질적으로 식물 연구를 하자’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식물조직배양 R&D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회사의 지향점을 담았다.
Q. 컨테이너를 활용한 조직배양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기존 수직형 스마트팜, 즉 식물공장들은 대부분 엽채류 위주의 생산만 가능해 재배 다양성 측면에서 명확한 한계점이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소비되는 농산물들은 감자·고구마 같은 식량 작물이나 딸기 등 과채류, 사과·복숭아 같은 과수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시장 니즈를 맞추기 위해 기존에 육묘업을 하고 있는 농가들의 농장에 식물 조직배양기술을 도입해 드리는 일을 한다. 농가 단위의 R&D 모듈과 생산시설이 합쳐진 복합체를 컨테이너로 만들어 농장에 공급하는 것이다. 작물별 다양한 레시피를 제공하고, 인프라를 활용한 고부가 식물을 농가에서 직접 육종한다거나, 바이러스가 없는 무병묘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솔루션까지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Q. 조직 배양을 고등학교 때 처음 시작했다고 하는데 원래부터 이 업종에 관심이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해서 학창시절 내내 비싸고 예쁜 식물들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늘릴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던 것 같다. 부모님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으셔서 ‘농사를 지어보면 어떻겠냐’라고 권유도 하셨다.
고민 끝에 농업고등학교를 가게 됐고, 그때 마침 친환경 농업이 유행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농업기초기술이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조직배양기술을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 조직배양 동아리를 만들어 팀원들과 연구를 시작했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와중에 ‘모종 단계부터 좋은 품종을 생산하고 육종을 할 수 있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졸업 후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진학하게 됐고 학생 창업으로도 이어지게 됐다.
Q. 컨테이너 조직 배양 실험실을 만들기 위해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컨테이너라는 범용적인 하드웨어를 도입해 조직 배양을 한다면 굉장히 고부가적인 가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환경적 측면에서도 바이러스나 미생물에 의한 오염 물질도 줄일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주 시골에 있는 농막 창고를 개조해 조직배양 랩(LAB)을 꾸몄다. 거기서 실험하고 조직배양하는 과정을 ‘식물조직배양 아카이브’라는 네이버 블로그에 꾸준히 업로드를 했다. 이 과정에서 저처럼 조직배양실을 만들어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계시던 지금의 CTO 님과 인연이 닿았고, 같이 팀을 만들어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Q. 조직배양기술 시장에서 파이토리서치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인가.
농업에서는 생각보다 씨앗을 심어 생산할 수 있는 작물이 매우 적다. 대표적으로 딸기나 고구마, 또 대부분의 과일 나무들도 줄기나 가지를 꺾어서 번식하는 ‘영양번식법’을 통해서만 번식이 가능하다. 조직배양기술은 이런 번식기술 중에서도 가장 진보된 기술이다. 병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작물의 새싹들을 대량으로 배양해 내는 기술인데, 바이러스가 없는 무병묘나 우량묘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농업 기술이다.
하지만 식물공장이나 조직배양 같이 효율적으로 식물생산을 하다 보면 양액이나 작물이 미생물에 의해서 감염될 수 있다. 파이토리서치는 감염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특허 및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Q. 농업 분야 종사자로서 이 시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변화 때문에 기존의 품종들이 재배가 어려워지고, 병해충들도 진화하면서 바이러스 역시 고도화되고 있다. 때문에 저항성 있고 품질 좋은 품종들로 재배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부가 품종들은 대부분 외국 품종들인데, 지금 세계적으로 종자전쟁이나 국가 간 품종 반출 금지 등으로 수입과 증식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소비자는 수입산에 비해 맛이 없거나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농산물을 소비하게 된다. 농민들도 원하는 종자나 모종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 않은 품종을 재배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농가소득도 낮아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농업 생산자가 직접 고부가 품종을 육종하고 고품질 모종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Q. 전망은 밝다고 볼 수 있지만 조직배양기술의 한계와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조직배양 분야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바이러스나 미생물에 의한 오염, 즉 병해충에 의해서 작물이 감염되는 문제다. 또 품종별로 최적의 생산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배지가 전부 다른데, 숙련된 연구자의 생산 배지를 설계하는 기술 등이 요구된다. 이런 부분이 조직배양을 통한 대량생산이 힘들다는 점이다.
Q.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는 중기부 지원사업을 통해 컨테이너형 조직배양 시설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식물조직배양 감염차단제’인 ‘PDS’라는 배양 첨가제 제품을 개발해서 내년 조달청 혁신장터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또 국립농수산대학교와 협업해 출하 시점에 늦지 않게 조직배양 생산을 조절할 수 있는 조직배양체 저장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농가 창업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배양 데이터를 수집해 과수, 화훼, 특용작물 등 다양한 농작물의 생산 배지를 자동으로 산출할 수 있는 엔진의 로직 설계를 구체화하려 한다.
Q. 파이토리서치의 사업 아이템이 상용화되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하는지. 청사진이 있다면.
파이토리서치는 오는 12월 농업회사법인 전환을 앞두고 있다. 법인 설립 이전에 식물공장 및 조직배양 시설에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감염 차단제, 그리고 농업분야 진로 및 직업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용 조직배양 키트, 이렇게 두 제품들의 양산형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다. 늦어도 내년 2분기부터는 OEM 생산을 진행해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2024년에는 컨테이너 조직배양 시스템과 품종별 배지 제품을 출시해 화훼, 과수, 특작 등 다양한 작물의 조직배양묘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업 청사진이라고 하면 조직배양실이라는 첨단 인프라를 대중적으로 보급해 농업인들의 소득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또 수집된 작물 데이터를 모아 인공지능(AI) 기반의 자동화 배지연구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이런 구조를 통해 2026년도에는 그린바이오 분야 소재 생산이 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는 게 목표다.
Q. 앞으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기후변화 이슈에 따라 기존 농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워지는 농업 생산성 문제나 이에 따른 병해충의 진화, 갈수록 피해가 늘어나는 농업생산 환경에 대응하려면 근본적으로 농사의 시작인 모종을 만드는 단계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병해 없는 깨끗한 고품질 모종을 농가에서 스스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조직배양기술 기반 컨테이너 식물공장을 만들고 있다. 최종 목표는 육묘 산업을 확장해 의약품·화장품에 사용되는 식물 소재에 대해 고품질, 고기능성 식물체를 조직배양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Q. 향후 계획과 비전이 있다면.
국내 농산물의 품종 획일화 문제, 나아가 소비자 시장의 니즈를 개혁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생산 시장의 문제가 풀려야 한다고 본다. 파이토 리서치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이터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정부 기관이나 학계에 계신 분들과 협업을 하고 있지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저희와 같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훌륭한 연구자들이 많이 계실 텐데, 파이토리서치가 이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