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사건, 그 후 100일…재발 방지 대책 현주소는

서현역 사건, 그 후 100일…재발 방지 대책 현주소는

기사승인 2023-11-10 16:57:24
지난 8월3일 차량의 도보 돌진과 무차별 흉기 난동이 벌어진 경기 분당구 서현역. 사진=임지혜 기자

분당 서현역 사건이 벌어진 지 100일이 지났다. 지난 8월3일 일상적인 공간에서 14명이 다치고 그중 2명이 숨진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이를 확인하듯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일상에서 범죄의 위협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주길 바란다”라며 사회 안전망 구축을 강조했다.

서현역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재발 방지 대책은 크게 네 축으로 이뤄져 있다. 처벌 강화를 통한 범죄 억제, 경찰의 범죄 대응 역량 향상, 범죄 피해자 지원, 정신질환자 지원 확대가 그것이다. 정부의 재발 방지 대책은 어디쯤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서현역 사건 이후 100일 동안 진행된 논의와 대책들의 현주소를 점검해봤다.

처벌 강화해 범죄 억제…“실효성 의문”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은 사실상 테러 행위와도 같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엄중히 처벌하겠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서현역 사건 다음날인 지난 8월4일 오후 2시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잇따른 흉악범죄에 대응하는 정부의 기조는 ‘처벌 강화’였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동의가 없어도 되는 머그샷 공개, 흉악범 전담 교도소, 범죄 예고글 강력 대응 등 다양한 대책이 나왔다.

피의자뿐만 아니라 피고인까지 머그샷 공개 대상으로 확대하고 동의 없이도 촬영‧공개할 수 있는 ‘머그샷 공개법’이 지난달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 역시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흉악범 전담 교도소는 지난 8월 ‘묻지마 흉악범죄 대책 마련 당정협의회’를 끝으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8월7일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경찰과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서현역 사건 이후 쏟아진 범죄 예고 글에 대해 지난 8월24일 법무부는 민사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형사처벌과 별도로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적극 제기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쿠키뉴스가 법무부에 확인한 결과, 지난 9월 신림역에서 범죄를 벌이겠다고 예고한 글 한 건에 4370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게 현재까지 전부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경찰청 등과 협의해 추가로 범죄 예고글 게시자에게 소송을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처벌을 강화해 범죄를 억제한다는 정부의 처방에 회의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범죄 피해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실질적으로 최근 사건과 같은 유형의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현역이나 신림역 사건들에서 피의자 심리나 성향을 봤을 때, 처벌이 무거웠다면 이들이 범죄를 안 벌였을 거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 역시 형을 선고받은 이후 구제책이 없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찰 현장 대응력 강화…“파격적인 개편 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29일 국무회의에서 “모든 현장 경찰에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겠다”며 경찰의 현장 대응력을 강화할 의지를 보였다. 이후 저위험 권총, 신형 방검복 등 논의가 시작됐다. 그 결과 올해 연말부터 가벼워진 신형 방검복이 지급될 예정이고, 저위험 권총은 내년부터 도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흉악범죄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이를 총괄하는 부서가 신설되고, 형사들도 순찰에 나서는 식으로 경찰 조직개편도 이뤄질 계획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더욱 파격적인 조직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면, 오히려 부서 간 칸막이가 심해져 정보 교류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현재 경찰 조직은 내근 인력이 많고 국·과가 많아 분절돼 있다. 계급도 세분화돼 있다”라며 “국‧과와 계급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관리‧감독 인력보다 현장에서 대응하는 인력이 늘어나고 신속한 대응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범죄 피해자 지원, 원스톱 시스템…“장애물 여전”

서현역 사건 이후 피해자인 고 김혜빈(20)씨 부모님이 치료비 지원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8월11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피해자 지원을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지난달 11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피해자 지원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을 지적하자, 한 장관은 신청 서류를 쉽게 만들고 원스톱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답했다. 피해자와 가족이 제공받는 지원 관련 정보가 한정적이고, 신청 절차가 까다롭다는 문제는 여전하다. 지원 금액이 치료비를 충당하기에 부족하고, ‘선지불 후청구’로 부담되는 것 역시 그대로다.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대한법률구조공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전문가는 피해자 지원, 특히 기금과 관련해 충분한 정보 제공과 신속성을 강조했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 피해자들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라며 “피해자에게 이런 방법이 있다고 알리기만 하는 상태고, 절차가 복잡해 피해자나 가족들이 그냥 넘어가곤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 구조 단체가 보통 법무부나 경찰 산하에 있어서 지원받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며 “사후 승인 형식으로 하거나, 민간에서 승인 후 신속하게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고립은둔청년, 마음 건강 대응 …“다각적 접근해야”

분당 서현역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은 대학을 자퇴하고 집에서만 생활한 은둔고립청년으로 드러났다. 신림역에서 흉기를 휘두른 조선, 등산로에서 사람을 살해한 최윤종 등도 은둔형 청년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19일 보건복지부와 연 당정협의회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묻지마’ 강력범죄에서 사회적 고립 등 마음 건강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당정은 고립은둔청년 등에 내년 3309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지난달 초 정부는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조기 발견을 위해 전 주기 서비스, 관리 대책은 물론, 사법 입원제를 허용하도록 하는 걸 골자로 한 ‘정신건강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는 사법 입원제를 두고 숙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법 입원제는 인권침해 측면이 있기에 예방 차원에서 적절한지, 공공 안전에 기여하는지 등 충분히 검토한 다음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지역사회 정신건강 관리가 촘촘하지 않아 비롯된 문제인 만큼 법률적으로만 접근하기보다 치료적‧보호적 관점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련의 범죄에서 은둔고립청년으로 밝혀진 이들이 많다고 은둔고립청년이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라며 “고립 동기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법률적인 제재보다 복지 측면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유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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