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이라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한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2일(한국시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전지훈련지인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로 떠났다.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튼) 등 해외파들은 현지에서 바로 합류했다.
클린스만호는 지난달 26일부터 휴식기를 맞이한 유럽파 일부와 시즌을 마친 K리거들을 서울의 한 호텔로 소집해 컨디션을 점검했다. 선수단은 실내에서 운동을 하면서 몸 상태를 끌어 올리고, 비디오 미팅 등을 통해 아시안컵을 준비했다.
완전체를 이룬 대표팀은 오는 6일 오후 10시 아부다비 뉴욕유니버시티 아부다비 스타디움에서 이라크와 마지막 평가전을 치르며 최종 점검을 할 계획이다. 평가전 이후 클린스만호는 오는 10일 아시안컵 결전지인 카타르에 입성한다.
아시안컵 E조에 편성된 한국은 1월 15일 오후 8시 30분(한국시간) 바레인과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이어 1월 20일 오후 8시 30분 요르단과 2차전, 1월 25일 오후 8시 30분 말레이시아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역대급이라는 평가 절로…더 이상 ‘손흥민 원맨팀’ 아냐
한국은 1956년에 열린 대회 출범 첫 대회와 2번째 대회인 1960년 대회에서 우승한 뒤 반세기가 넘도록 아시안컵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간 차범근, 홍명보, 최순호, 김주성, 박지성, 황선홍, 기성용 등 한국 축구 역사를 빛낸 레전드들이 여러 차례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연이 닿지 않았다.
한국은 이번 아시안컵 우승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대회에 출사표를 올린 한국 축구 대표팀 라인업 또한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격진은 리그에서 물이 오를대로 오른 상태다. 덴마크 리그에서 뛰고 있는 조규성(미트윌란)은 리그에서 8골 2도움을 기록하며 유럽 진출 첫 시즌에 좋은 감각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표팀 측면을 이끄는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울버햄튼)은 최근 소속팀에서 절정의 활약을 펼쳤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12골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득점 랭킹 3위에 위치했고, 황희찬은 10골 3도움을 올리면서 득점 랭킹 6위에 랭크됐다.
여기에 두 선수를 뒤에서 받쳐주는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의 최근 경기력도 상당히 좋다. 이강인은 4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2023 트로페 데 샹피온(슈퍼컵)’에서 전반 3분 결승골을 터트리며 소속팀 파리생제르맹의 2대 0 승리를 견인했다. 이강인은 이 대회의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공격진에 손흥민이 있다면 수비진에는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있다. 2023년 상반기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이탈리아) 소속으로 33년 만에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 구단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도 엄청난 수비력을 뽐내고 있다.
김민재는 지난해 10월말 발표된 ‘2023 발롱도르’에서 수비수 중 가장 높은 순위인 22위에 올랐다. 이외에도 ‘2023 AFC 국제선수상’ ‘2023 한국축구협회(KFA) 올해의 선수상’ 등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다. 대표팀에서도 2023년 8차례 A매치에 출전해 6경기 연속 무실점에 앞장서는 등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김민재는 지난 2일 ‘2023 KFA 어워드’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뒤 “지금 공격수들의 화력이 워낙 좋고 매 경기 득점하고 있기 때문에 수비수 입장에서 더 집중해야 한다”며 “우리가 잘 준비한다면 좋은 성적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출중한 선수들이 모인 대표팀의 조직력도 점점 완성되고 있다. 지난 3월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한 이후 5경기 동안 무승에 그쳤던 대표팀은 이후 5연승으로 2023년을 마무리했다. 5연승을 기록하는 동안 한국은 총 19골을 넣었고, 단 1골도 내주지 않았다. 2023년 최종 성적은 5승 3무 2패.
클린스만 감독 부임 초기에는 확실한 컬러를 잡지 못해 지지부진한 빌드업으로 우려의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빠른 템포의 공격 축구 이식에 성공한 이후 상대방을 연신 두들기며 승수를 쌓아나가고 있다.
최대 라이벌은 일본, 이란도 경적할 수 없는 상대
이번 대표팀 우승 도전에 가장 경계되는 대상은 역시 아시아 최강 일본(FIFA 랭킹 17위)이다. 이전까지 일본은 한국 축구와 라이벌 구도를 써왔지만, 이번에는 한국이 일본에 도전하는 그림이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대표팀은 지난 1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태국과 평가전에서 5대 0 대승을 거뒀다. 이 경기를 포함 일본은 지난해 6월 엘살바도르전부터 A매치 9연승을 달렸다. 약체 뿐만 아니라 독일, 캐나다 등 강호들을 맞아 4대 1 완승을 거뒀고, 튀르키예를 상대로도 4대 2 승리를 거두는 등 아시아 최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A매치 9연승 과정에서 무려 39골, 경기당 4.33골을 넣은 압도적인 화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4골 이하에 그친 경기는 지난해 10월 튀니지전(2대 0 승리)이 유일하다.
일본의 뎁스도 상당하다. 최근 발표한 일본 축구대표팀 엔트리 26명 중 20명이 해외파다.
일본 대표팀 주장 엔도 와타루(리버풀)를 중심으로 구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 도미야스 다케히로(아스널), 이타쿠라 고(묀헨글라트바흐), 미나미노 다쿠미(AS 모나코), 도안 리쓰(프라이부르크) 등 해외파 대부분이 모리야스호에 승선했다. 최근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왼 발목을 다친 공격수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턴)도 이름을 올렸다.
특히 수비진은 주전 전원이 유럽파다. 최근 소속팀에서 부진한 공격형 미드필더 가마다 다이치(라치오)와 지난 시즌 스코틀랜드 리그 득점왕인 후루하시 교고(셀틱)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을 정도로 탄탄한 뎁스를 자랑한다.
일본은 조직력도 물이 오른 상태다. 2022년 12월에 열린 ‘2022 국제축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이후 한국은 파울루 벤투 감독(현 아랍에미리트 감독)과 결별한 것과 달리 일본은 하지메 감독 체제를 이어가면서 더욱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하게 됐다.
다행히 한국은 일본과 결승전 이전에는 맞붙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다면 양 팀은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일본은 이번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인도네시아, 이라크, 베트남과 함께 D조에 편성됐다. 이변이 없는 한 1위로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FIFA 랭킹이 높은 이란(21위)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우리나라는 이란과 아시안컵에서 7차례 만나 3승 1무 3패로 호각세다.
이란도 2023년에 좋은 성적을 냈다. 지난해 3월 러시아전에서 1대 1로 비긴 뒤 8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케냐, 아프가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불가리아, 앙골라, 요르단, 카타르를 모두 격파했다. 다만 지난해 21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에서 2대 2로 비기면서 연승 행진이 끊겼다.
이란은 화끈한 공격진을 자랑한다. 사르다르 아즈문(AS 로마)을 필두로 메흐디 타레미(FC포르투), 알리레자 자한바크시(페예노르트), 사만 고도스(브렌트포드) 등 유럽파들이 팀을 이끌고 있다.
한국은 이란과 8강전에서 맞붙을 확률이 높다. E조의 한국과 C조의 이란이 조 1위를 차지하고, 16강에서 나란히 승리를 거둘 경우 8강에서 격돌하게 된다. 이란은 C조에서 팔레스타인, 홍콩, 아랍에미리트를 차례로 상대해 조 1위가 유력하다.
이외에도 2015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호주, 연령별 대표팀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등이 대회 다크호스로 꼽히고 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