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쪼갠 박자를 타고 힘차게 팔다리를 뻗던 소녀들이 확 달라졌다. 그룹 르세라핌은 19일 공개하는 신곡 ‘이지’(EASY) 뮤직비디오에서 뭉근한 트랩 음악에 몸을 맡긴다. 움직임이 부드럽고 느낌은 ‘힙’하다. 이날 서울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신보 소개 자리를 가진 르세라핌은 “보기엔 쉬울 것 같아도 그간 췄던 모든 춤 가운데 가장 어렵다”며 “이런 무대 뒤 피땀 눈물을 새 음반에 담았다”고 말했다.

“‘이지’ 가사, 독기 장난 아냐”

이날 미리 들은 ‘이지’를 힙합의 한 갈래인 트랩 비트에 몽환적인 보컬이 더해져 외국곡 같은 느낌을 줬다. 강렬한 사운드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르세라핌의 기존 곡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허윤진은 “노래가 너무 좋아서 시도 때도 없이 들었다. 미국 빌보드 핫100(싱글차트)에도 올려놓고 싶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가사에선 르세라핌 특유의 강인함이 돋보인다. 쉽지 않은 일도 쉽게 보일 만큼 자신을 단련하겠다는 각오가 ‘쉽지 않음 내가 쉽게 이지’ ‘다친대도 걸어’ 같은 노랫말에 담겼다. 사쿠라는 “르세라핌의 특징은 독기”라며 “‘이지’ 가사도 집중해서 들어보면 독기가 장난이 아니라 이번에도 르세라핌답다고 느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르세라핌이 데뷔했을 때부터 음악 작업을 진두지휘한 방시혁 프로듀서가 프로듀서 그룹 13과 함께 이 곡을 만들었다.

“당당한 모습도, 불안하고 고민하는 모습도 내 일부”

‘이지’가 실린 동명 음반은 ‘불안’을 화두로 던진다. 카즈하는 “멤버들 내면에 집중한 음반”이라며 “그만큼 더 솔직하고 인간적인 르세라핌을 보여줄 것”이라고 귀띔했다. 데뷔 때부터 두려울 것 없고(노래 ‘피어리스’) 용서받을 것도 없다(노래 ‘언포기븐’)며 당당함을 강조해온 르세라핌의 깜짝 변신이다. 카즈하는 “우리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며 “우리가 보여준 당당함과 강인함이 타고난 모습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임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허윤진은 “그동안 보여준 당당한 모습도,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모습도 모두 나”라면서 “르세라핌을 통해 솔직해지면서 내 불안과 고민도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우리의 솔직함이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길”

신보를 준비하는 과정도 ‘이지’의 노랫말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허윤진은 매일 3㎞씩 달리기를 하며 노래를 연습했다고 했다. “‘이지’ 안무를 소화하도록 체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갈고닦은 것이다. 사쿠라는 처음으로 랩 레슨을 받았다. 허윤진은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던 르세라핌이 불안함을 표현한 음반을 들고나와 ‘왜 이렇게 달라졌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솔직함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지’를 통해 팬 여러분이 르세라핌을 더 가깝게 느끼시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소망했다. 힙합으로 폭을 넓힌 르세라핌은 오는 4월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K팝 걸그룹이 이 페스티벌에서 단독 공연하는 것은 그룹 블랙핑크에 이어 르세라핌이 두 번째다. 김채원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르세라핌을 더 알릴 기회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