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에 따른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두고 의료계와 시민단체 간 온도 차가 뚜렷하다. 의료계는 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특례 대상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시민단체는 적용 진료과 범위를 한정하는 등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오후 국회에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 공청회’를 열고 의료계와 시민단체, 법조계 전문가를 초청해 법 제정 추진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한 의료인이 업무상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를 일으키더라도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부는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들의 사법 위험을 낮추기 위해 이 법안을 고안했다.
특례법에 따르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한 의료인이 의료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를 입혀도 환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수사기관이 업무상 과실치상, 중과실치상 혐의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또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와 종합보험·공제에 모두 가입하면 환자가 의료 과실로 상해를 입었다고 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특히 필수의료 행위의 경우 환자가 중상해를 입어도 공소 제기가 가로막힌다. 다만 환자가 사망한 경우엔 공소는 가능하지만 형이 감면될 수 있다.
의료인이 특례를 받으려면 한국의료분쟁조정원(중재원)의 조정·중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재원은 피해자의 피해 규모를 감정해 의료진의 배상액을 제시하고, 정해진 한도 내에서 배상액을 부담하도록 한다. 진료기록 CCTV 위·변조, 의료분쟁 조정 거부, 환자 동의 없는 의료행위 등 면책 제외 사유에 해당한다면 특례 적용이 배제된다.
의료계는 이번 특례법 추진을 반기면서도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사람의 생명과 인체 기전 등은 100% 규명되지 않아 언제든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분쟁으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의료사고특례법은 조기에 서로 양해하고 조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특례에서 사망을 배제한다면 최중증질환 수술을 담당하는 필수의료과 인력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사망 위험이 높은 환자를 수술하면서 소송에 휘말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 적극적인 치료가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는 필수의료 개선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며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법안은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의료사고 형사 책임을 면제해준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면서 “필수의료 위험 부담을 낮추기 위함이라면서 미용, 성형 같은 필수의료와 무관한 중과실까지 특례로 인정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 분만, 소아 등 필수의료 의사로 적용 대상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수 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입증 책임 전환 내용도 부재한 상황이고, 법안 분쟁을 판정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국민 신뢰도 부족한 면이 있다”며 “신중한 검토와 공감대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복지부 측은 아직 초안인 만큼 충분히 논의해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법안 내용보다 이 법을 왜 추진하려는지 취지를 알아 달라. 의대 정원을 증원하려는 카드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의대 증원이나 특례법 모두 필수의료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 정책관은 “공청회 이후에도 많은 절차가 남았다”며 “여러 방식을 통해 의견을 듣고 수렴하겠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