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에 이어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면서 의료현장의 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대형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진료를 봐야 하는 희귀질환, 중증질환 환자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소속 교수들 대부분은 지난 25일 사직을 결의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날 19개 대학이 참여한 성명을 내고 “오늘(25일)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뒤 교수직을 던지고 수련병원과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빅5’라 불리는 서울 주요 대형병원 교수들도 병원을 등질 계획이다. 이미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병원 가운데 4개 병원 교수들이 사표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남은 한 곳인 가톨릭대 의대 교수들도 27일 회의를 열고 사직서 제출 일정 등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현실화되며 의료 현장에선 ‘의료 대란’이 임박했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환자들은 진료를 받지 못할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도 그 중 하나다. CRPS는 외상이나 수술 후 특정 신체부위에 심각한 고통을 느끼는 희귀질환이다. 질환 특성상 일정 주기로 상급종합병원을 찾아 통증 치료를 받고 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하는데, 의대 교수들의 병원 이탈이 시작되면 피해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10년 넘게 CRPS를 앓고 있는 강병진(32)씨는 1주일에 한 번 재활치료를 위해, 2주에 한 번은 진료, 진통제 처방 등을 받기 위해, 또 4주마다 정기점검을 위해 병원에 들른다. 특히 한 달에 한 번은 약물주입펌프의 리필이 필요해 방문한다.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을 주입하는 자동펌프를 뱃속에 넣어서 일정량의 약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이 펌프 리필이 한 달 주기로 필요하다.
강씨는 “리필을 받지 않으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렵다. 펌프 리필을 제때 받지 못하면 기계를 빼야 한다고 하던데, 다시 수술을 하는 것도 걱정”이라며 “이번에 리필을 받을 때 병원에서 파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환자 입장에선 얼른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 뿐”이라고 토로했다.
중증 환자들의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암 환자의 조혈모세포 이식술과 항암치료 일정이 연기되고, 백혈병·혈액암 환자의 골수검사와 심장질환 환자의 수술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25일 “교수마저 병원을 떠난다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은 더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며 그로 인한 환자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환자들에게는 당장 의사들이 필요하다”라면서 “정부와 의사단체가 각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닌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도 쿠키뉴스에 “환자들은 전공의가 없는 지금도 항암과 수술이 연기되고 지쳐있는 상태다.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로 인해 환자들은 실낱 같은 희망의 끈도 완전히 놓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