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규모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가 6주째 이어지고 있지만,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한의사협회 새 회장으로 ‘강경파’로 꼽히는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장이 당선되면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질 전망이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임 회장은 지난 26일 치러진 의협 회장 결선투표에서 2만1646명(65.43%)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됐다. 임 회장은 당선 직후 ‘총파업’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면허정지나 민·형사 소송 등 전공의·의대생, 병원을 나올 준비를 하는 교수들 중 한 명이라도 다치는 시점에 총파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임 회장의 당선으로 정부와의 협상은 더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사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파면 △의대 증원에 관여한 안상훈 전 사회수석 공천 취소 등을 정부와 대화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그가 제시한 공약도 정부 정책 방향성과 정반대다. PA(진료지원) 간호사의 의사 대행 금지, 의사면허 취소법 개정, 수술실 내 CCTV 설치법 개정, 당연지정제(어떤 의료기관에서 진료받더라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제도) 폐지 등이 대표적이다.
임 회장은 의대 정원을 오히려 줄여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금도 동네 사거리에 수없이 많은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의원이 있을 정도로 의료 접근성이 좋아 오히려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500명 내지 1000명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증원과는 최대 3000명 차이가 나는 셈이다.
벌써부터 의정 간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증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감원은 너무 방향성이 다른 것 같다”며 “소통을 통해 감원 주장 이유와 논거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총파업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판 수위를 높였다. 박 차관은 “의사집단이 법 위에 서겠다는 주장”이라며 “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선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된다는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고 경고했다. 임 회장이 제시한 대화의 전제조건에 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한 달 넘게 충돌하는 사이 환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에 따르면 전북 지역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수혈을 거부당한 투석 환자가 3일간 대기하다가 사망했다. 또 부산에서 90대 환자가 심근경색으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연합회는 27일 “더 이상 중증 환자들은 버틸 힘도 생명의 연장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시간과 기회를 놓쳐 버렸다”면서 “정부와 의료계는 조속히 환자 안전에 대한 실효적인 조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