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지난해 EBS 다큐멘터리K-인구대기획 초저출생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의 발언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당시 한국의 합계출생률이 0.78명이라는 걸 들은 윌리엄스 교수는 “이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생률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우려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출생률 반등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듬해 출생률은 0.72로 하락했다.
한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는 저출생뿐만이 아니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지난해 ‘2023 한국인이 바라본 사회문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조사 참여자 1000여명의 응답을 토대로 ‘부정적 영향력이 높은 TOP 30 사회문제’를 선정했다. 응답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사회문제는 ‘투명하지 못한 정부 운영(정부 신뢰 하락)이었다. 높아진 기후 위기 인식 탓에 ‘폭염과 한파의 증가’를 비롯한 환경 관련 사회 문제는 5개나 이름을 올렸다.
‘청년 일자리 부족’과 ‘구인 및 인력난’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청년 세대가 지속해서 유입되는 수도권은 일자리 부족이, 이들이 이탈한 지방 도시에서는 인력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3~2022년 수도권의 20대 순이동 인구는 59만1000여명이었다. 순이동 인구는 지역의 전입 인구에서 전출 인구를 뺀 값으로, 지난 10년간 수도권에 순유입된 20대가 60만여명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청년 인구의 유출로 지방 소도시들은 소멸 위기에 처했다.
청년 세대는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달 31일 시민정치 교육 프로그램 ‘청년정치학교’의 수강생 5명이 모였다. 유튜버, 작곡가, 직장인 등 각자의 일에 종사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키워온 패널들의 생각을 물었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생률이 0.72명에 그쳤다.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치다. 저출생 문제에서 가장 해결이 시급한 점은 무엇일까.
정혜윤 :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이 상태에서 무작정 아이를 낳으라는 것은 난센스다. 태어난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한 명을 낳기도 어려울 것 같다. 미래 노동력을 위해서 저출생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와닿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인구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인공지능 발달로 일자리는 없어지는 상황이지 않은가. 저출생 문제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변해야 한다.
서동휘 : 저출생은 부모의 소득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입장에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일정 소득 수준이 되지 못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많은 청년이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대기업으로의 이직은 쉽지 않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성장이 어렵기 때문에 청년들이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남권율 : 저출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청년의 사회 진출이 점점 늦어진다는 것에 있다. 직업을 구하고, 자리를 잡고, 결혼자금을 모으면 30대 초반 정도가 된다. 자연스레 아이를 한 명 이상 낳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나이를 앞당기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재원 : 남녀가 유연하게 만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계약)를 예로 들 수 있다. 한국 정서에 맞게 현지화하는 과정이 필요할 테지만, 이 같은 방법을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김찬혁 : 저출생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로 TV에서 방영되는 육아 예능을 꼽고 싶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연예인 부모와 자녀가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휘황찬란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런 방송이 현실과 이상에 괴리를 만들어 놓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의 첫 번째 공동체는 가정인 만큼, 가정의 소중함을 알리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세계기상기구는 지난 2023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해였다고 발표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여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한재원 : 국가 차원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국내의 다양한 기업에서 ESG 경영을 실천해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를 국가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환경 문제에 대한 국민 전체의 인식 개선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환경 보호를 위한 시민들의 공감대가 모아져야 한다.
정혜윤 : 플라스틱을 비롯한 쓰레기는 절대 줄지 않을 것이다. 자원의 고갈은 예정돼 있고, 현재로선 고갈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를 통해 관리가 이뤄져야 환경 문제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량제 봉투가 좋은 사례다. 예전과 달리 쓰레기를 버리는 데 비용이 들면서 자연스레 재활용이 증가했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 맞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규제가 필요하다.
김찬혁 : 예전에 온라인 쇼핑몰을 경영한 적이 있었는데, 환경적인 부분을 신경 쓴 기업들의 상품이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소비자들도 마냥 가격만 보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환경처럼 다양한 사안들을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패턴에 맞춰 기업들이 자사 상품의 증대와 환경 보호를 위해서 친환경을 채용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권율 : 플라스틱 쓰레기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높이기 위해선 표준화가 필요하다. 표준화의 좋은 예시로는 소주병이 있다. 소주를 생산하는 여러 기업이 병을 통일하기로 하면서 공병 회수가 크게 올라갔다. 플라스틱의 재질이나 두께에 따라 국가 표준을 마련한다면 배출되는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이 좀 더 높아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서동휘 : 과학 기술이 더욱 많이 발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보다 비교적 상황이 좋다. 환경 분야에서 많이 선진화돼 있고, 기술적 역량도 충분하다. 다만 기술이 충분히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지금 당장은 여전히 원자력 에너지 등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10년간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유출된 인구가 약 60만 명에 달했다. 심각해지고 있는 지방의 청년 유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혜윤 : 주변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동료들이 많다. 다들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서 왔다고 한다. 지방에도 일자리가 늘어나면 좋겠지만 정부가 나서도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방에서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각 지자체가 팔 걷고 나서 청년 창업가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나 정책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
김찬혁 : 지방 대학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들이 공부하기도 좋고, 놀기도 좋은 대학으로 말이다. 또 수도권에 있는 정부 부처, 행정 기관의 지방 이전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좋은 대학과 기관에 근무하길 원하는 청년들을 자연스럽게 지방에 정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남권율 :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의 확보다.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은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지역마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 포항시의 ‘포스코’처럼 말이다. 산업이 자리를 잡는다면, 지역 대학에 관련 학과를 신설해 곧바로 인재를 수급할 수도 있다.
한재원 : 지방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문화예술 사업을 지금보다 활성화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산림청에서 진행한 ‘산촌청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여러 자연 친화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지방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많은 청년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이뤄지면 좋겠다.
서동휘 : 청년들은 변화에 민감하다.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오는 이유도 지방에 비해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의 청년 유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는 지방에서도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속도를 높이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선택은 청년의 몫이지만, 선택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박진우, 안겸비, 최세희, 한상욱 대학생 독립언론 ‘대학알리’ 기자 hansangwook100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