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7·한화 이글스)이 삼세번 끝에 100승 고지에 올랐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를 점령한 뒤 달성한 업적이라 더 뜻깊게 다가온다.
류현진은 30일 오후 6시30분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SSG 랜더스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103구를 던져 7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2실점(1자책) 호투로 시즌 2승(3패)이자 리그 통산 100승째를 올렸다. 류현진의 올 시즌 평균자책점은 종전 5.91에서 5.21(38이닝 23자책)로 하락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류현진은 2회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박성한을 땅볼로 유도했지만 2루수 이도윤의 포구 실책이 나오면서 1루에 내보냈다. 후속타자 고명준의 안타와 이지영의 진루타로 만들어진 2사 2,3루에 위기에서 류현진은 박지환에게 3루수 내야안타를 허용하며 실점했다. 1루 주자 박지환의 도루를 저지하고 추가 실점은 막았다.
노시환의 만루홈런으로 팀이 4-1로 앞선 4회,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선두타자 에레디아와 박성한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2루에 몰렸다. 여기서 고명준을 2루수 땅볼로 잠재웠으나 이지영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아쉬운 실점을 더했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찾은 류현진은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5회 추신수의 2루타와 한유섬의 볼넷으로 1사 1,3루 득점권 위기를 맞았지만, 에레디아를 3루수 병살타로 유도해 이닝을 끝냈다.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이 완벽히 통했다. 6회는 첫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냈다. 제 역할을 다한 류현진은 6회까지 소화하고 불펜진에 마운드를 넘겼다.
류현진의 활약 덕에 한화는 SSG를 8-2로 제압하고 13승(18패)째를 올렸다.
올 시즌을 앞두고 류현진은 12년 만에 한국 무대에 복귀했다. 2006시즌부터 2012시즌, 총 7시즌 간 ‘독수리 군단’ 에이스로 활약한 류현진은 당시에도 한국 최고 투수로 평가받았다. KBO 1기 때 류현진이 선보인 재능은 한국이 담기 힘든 수준이었다. 시속 150km 안팎 패스트볼과 예리한 체인지업에 KBO리그 타자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통산 98승52패 평균자책점 2.80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2012년 KBO리그를 떠난 류현진은 지난 시즌까지 꿈의 무대인 MLB를 누볐다.
류현진은 MLB에서도 에이스급 선수로 활약했다. MLB 최고 인기팀 중 하나인 LA 다저스에서 데뷔 시즌부터 14승(8패)을 올리더니, 2년 차에도 14승(7패)을 챙기며 팀 에이스로 거듭났다. 이후 어깨 수술로 잠시 위기도 있었지만 류현진은 곧바로 부상을 털고 재기에 성공했다. 2019년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2.32) 타이틀을 거머쥐며 찬란한 전성기를 맞았다. 활약을 인정받은 류현진은 2020시즌 4년 8000만달러(약 1080억원) 대형 FA 계약을 맺고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기도 했다. MLB 통산 성적은 78승48패 평균자책점 3.27이다.
MLB 정상급 투수답게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류현진은 사이영상(MLB 최고 투수상) 포디움에 무려 2번(2019년 2위·2020년 3위) 올랐다. MLB 최고 좌투수상인 워렌 스판상 수상(2020년), ALL-MLB 세컨드팀 2회(2019·2020년) 내셔널리그 올스타(2019년) 등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MLB 팬들은 류현진을 향해 ‘코리안 몬스터’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당장 지난 시즌에도 류현진은 토론토 소속으로 3승3패 평균자책점 3.46으로 선전했다. MLB 경쟁력이 충분히 남아있던 셈이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한국 무대로 돌아오고 싶었던 류현진은 8년 총액 170억원에 한화 복귀를 결정했다.
MLB에서 날뛰었던 것처럼, KBO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천하의 류현진도 세계 최초로 시행되는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에 흔들리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직전 등판이었던 24일 KT 위즈전 5이닝 7실점(5자책)으로 패전을 기록한 뒤 류현진은 이례적으로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후 취재진을 만난 류현진은 당시를 돌아보며 “3회 때 공이 낮다고 볼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5회에는 거의 같은 높이로 공이 들어갔음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5회 공이 살짝 더 빠졌기에 그게 오히려 볼이 돼야 한다”고 ABS를 비판했다.
이에 KBO는 곧바로 해당일 ABS 투구 추적 시스템을 전격 공개하며 류현진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KBO는 “3회 조용호의 타석 3구째는 ABS 중간 존 하단을 0.15cm위로 통과했으나 ABS 끝면 존 하단을 0.78cm 차이로 통과하지 못해 볼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ABS 불편함을 호소한 후 첫 등판에 나선 류현진은 마치 논란이 있었냐는 듯, 스트라이크 존 모서리에 공을 꽂았다. ABS에 살짝 벗어난 공이 나왔을 땐, 오히려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6회를 제외한 매 이닝 주자를 내보냈음에도 단 2실점으로 틀어막았다. SSG 타자들은 득점권 기회까진 만들었으나 이후 류현진의 강력한 구위에 쉽사리 득점하지 못했다.
그렇게 류현진은 KBO리그 역대 33번째 100승을 달성했다. 류현진에 앞서 32명이 100승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MLB를 점령하고 다시 한국 땅을 밟은 류현진에게 ‘100승’은 남들과 조금은 다른,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