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어린이날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보장원에서 진행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반문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일이다. 이전까진 어린이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정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 원장의 왼쪽 가슴에 ‘365일 아동의 날’이라는 문구가 적힌 배지가 거꾸로 달려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아직은 ‘365일 아동의 날’이 아니다”라며 “이 배지를 바로 달게 되는 아동 존중사회가 오면, 어린이날 자체가 없어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날이 맞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보장원은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의 권리 찾기에 기여한 방정환 선생의 뜻을 이어가는 기관이다. 정 원장이 보기엔 ‘365일 아동의 날’이 되기까진 갈 길이 멀다.
어린이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존’을 예로 든 정 원장은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사회가 아이를 반기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며 “아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선 아이가 태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인 국민이 노키즈존이 아닌 공간을 더 많이 이용하면 좋겠다”며 “노키즈존이 확대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 인색한 분위기 때문에 아동의 행복도가 과거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 원장은 “아동총회를 하면 놀 시간이나 공간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과거에 비해 영아 사망률이 크게 떨어진 것을 보면 건강과 안전 지표는 좋아지고 있지만 행복도는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국만의 특징적인 현상인데, 빈곤하지 않은 계층의 아동도 불행하다고 느낀다. 경쟁에 시달려 놀지 못하고 학습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근면하게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큰데, 기술 발전으로 창의력의 중요성이 증대된 만큼 놀 권리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보호자를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정 원장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고 밝히면서 “어른들도 일만 하고 싶진 않을 것 아닌가. 어른들도 놀고 싶듯, 아이들에게도 놀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만 하는 사람은 번아웃 등에 시달려 중간에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놀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보장원은 ‘놀 권리’를 명시한 아동기본법 제정을 준비 중이다. 아동기본법은 아동정책의 기본 이념을 제시하는 제도로, 국가와 사회의 책무를 명시해 아동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 생존권, 발달권, 참여권을 비롯해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놀 권리 등을 포괄적으로 명시할 방침이다.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 당사국이지만 국내 이행법률이 없어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정 원장은 “아동은 돌봄과 보호의 대상이긴 하지만, 권리의 주체이기도 하다”라며 “부모에게 감추고 싶은 의료적 비밀이 있을 수 있지 않나. 부모가 동의하지 않아도, 의료진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아동권리보장원이라는 기관 이름에 걸맞게 아동이 존중 받는 사회로 진전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는 “전 세계에서 ‘아동권리’를 명칭에 담은 공공기관은 아동권리보장원 밖에 없다”며 “기관이 있다고 해서 아동 존중사회라고 할 순 없지만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아동을 어린 시민으로 인정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