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100억원 횡령사건 이후 처음으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장들을 만났다. 이 원장은 계속되는 은행권의 횡령 사고를 두고 “은행 존립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제도개선이나 사후 제재 강화만으로는 예방에 한계가 있다면서, 최고경영자(CEO)가 조직문화 차원에서의 과감한 변화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 원장은 19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은행회관 14층 회의실에서 20개 은행 은행장들과 만나 간담회를 진행했다. 올해 이 원장 주재로 진행된 공식 은행장 간담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원장은 이날 은행권에서 상생금융 실천과 금융시장 안전판 역할에 앞장선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 △금융시장 시스템 리스크 예방 △불완전판매·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조직문화 정립 △은행산업 미래 준비 등에 대한 당부사항을 전달했다.
이 원장은 먼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연착륙과 가계부채 안정적 관리를 위한 은행권 역할을 당부했다. 경공매에 나온 PF 사업장에 최대 5조원을 공급하는 신디케이트론에 은행권이 적극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내달 1일부터 시행 예정인 스트레스 DSR 2단계 제도의 차질 없는 준비도 언급했다.
되풀이되는 불완전판매와 횡령 사고와 관련해서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 원장은 “최근 몇 년간 은행권에서 DLF, 라임 사모펀드, 홍콩H지수 ELS 등 불완전 판매가 잇따라 발생했다”면서 “최근까지도 서류 위조 등으로 인한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는 등 임직원 도덕 불감증, 허술한 내부통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은행산업 평판과 신뢰 저하뿐만 아니라 영업 및 운영위험 손실 증가 등 재무 건전성에도 영향을 끼쳐 은행 존립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며 “(당국이) 내부통제 혁신방안 및 지배구조 모범관행 마련, 책무구조도 도입 등 여러 제도적 보완을 추진해 왔지만 임직원들의 잘못된 의식과 행태의 변화 없이는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직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문한 그는 특히 CEO 책임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준법 및 윤리의식이 조직 내 모든 임직원들의 영업행위 및 내부통제 활동에 깊이 스며들 수 있도록 조직문화 차원에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CEO가 △임직원 누구라도 불완전판매나 금융사고 개연성을 감지할 경우 스스럼없이 문제제기할 수 있는 문화 조성 △영업목표 달성을 위해 단기실적만 좋으면 내부통제나 리스크 관리는 소홀히 하더라도 우대받는 성과 보상 체계를 개편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금융당국도 은행의 조직문화를 진단·분석하여 개선을 유도하는 감독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등 새로운 감독 수단을 마련해 은행 조직문화 변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심리·행동 분석 전문가를 포함하는 전담 조직을 운영하는 네덜란드 당국, 금융회사 임직원 대상 설문 등을 실시해 회사별 조직문화의 강·약점을 파악하고 개선을 유도하는 호주 당국을 해외 사례로 들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은행권 요구가 높은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빅테크 금융진출, AI 기술 활용 확대 등으로 전통적 은행영업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고 변화와 혁신은 은행의 장기 생존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이 원장은 “앞으로도 부수·겸영업무 범위 확대, 자산관리서비스 역량 제고 등을 위한 감독·규제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은행권에서 진행 중인 홍콩H지수 ELS 자율배상과 관련해서는 “장기적인 신뢰 회복 관점에서 원활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언급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