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선택이 될 ‘탈주’ [쿡리뷰]

후회 없는 선택이 될 ‘탈주’ [쿡리뷰]

기사승인 2024-07-03 06:00:22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모두가 잠든 야심한 내무반. 한 남성이 눈을 반짝 뜨고 잽싸게 밖으로 향한다. 온갖 비밀 통로를 꿰뚫고 있는 그가 향한 곳은 휴전선 부근 비무장지대. 탈영 전 목함 지뢰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는 꿈조차 꿀 수 없는 나라를 빠져나가고 싶다. 하지만 상황이 자꾸만 꼬인다. 북한병사 규남(이제훈)의 탈주극은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는 한 군인의 탈출기를 중심축에 두고 캐릭터 사이 관계성과 다양한 상황 변주를 아우른다. 마음을 졸이게 하다가도 경쾌해지고, 그러다 일순 긴장감이 엄습한다. 적절한 완급조절이 극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규남은 한때 탐험가를 꿈꿨다. 그는 너른 세상을 보고 싶었지만 조국은 그에게 어떤 자유도 허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라도 풍족하면 좋으련만, 순찰 중 잡은 멧돼지도 윗선에 빼앗긴다. 그가 탈주를 결심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 법.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이 등장하며 규남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현상의 속내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는 규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관객의 시선을 규남에게 향하도록 한다. 그러면서도 현상의 의뭉스러운 존재감을 아로새겨 두 인물의 관계를 유추하게끔 한다.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미래를 위해 달리는 규남과 현재를 지키려는 현상의 추격전은 ‘탈주’의 근간을 이룬다.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군더더기는 덜고 부각해야 할 것들에만 집중한 연출이 뛰어나다. 속도감이 좋다 보니 이야기 속으로 금세 빠져든다. 납득되지 않는 일부 장면도 멋들어진 영상미와 세련된 만듦새 덕에 쉽게 용인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여럿이지만 웃을 대목도 곳곳에 심어둬 보는 맛을 더한다.

배우들이 어느 때보다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구교환이 압권이다. 등장하는 모든 장면마다 최대한의 매력을 보여준다. 작품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작은 몸짓과 행동만으로도 캐릭터를 단숨에 이해하고 납득시키는 연기가 일품이다. 인물이 가진 생동감이 스크린을 뚫고 전해지는 듯하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이제훈 역시 성실하게 연기한다. 초조해하다가도 능청맞게 구는 등 인물의 심리상태를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홍사빈과 서현우는 짧은 등장에도 제 몫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다.

작품이 가진 메시지 또한 좋다. 누구나 한 번쯤은 환경에 가로막혀 꿈을 포기한 경험이 있지 않나. 억압된 현실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규남이 무모할 정도로 내달릴 때면 마음속에서 감정이 마구 끓어오른다. 규남의 탈주기를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현상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각 캐릭터에 주목할 때마다 새로운 감상이 피어난다. 공감과 감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영화다. 지루할 틈 없는 길이감도 딱 좋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될 만하다. 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94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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