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원대 횡령 사고 여파가 가시기 전 우리은행에서 또 내부통제 부실 사고가 터졌다. 전 회장 친인척이 연루된 부정 대출이지만 불똥이 현 경영진에까지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이 모기업인 우리금융지주의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에게 600억원의 부당 대출을 내준 사실이 드러나 제재절차에 착수했다. 손 전 회장은 지난 2017년 우리은행장에 취임한 후 2019년 우리금융지주가 재출범하면서 지주 회장직을 지냈고 지난해 3월 임기를 마쳤다. 2020년 3월까지는 우리은행장과 지주 회장직을 함께 지냈다.
前회장 친인척에 616억원 대출…“부적정 의심 350억원”
금감원 수시검사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 친인척을 대상으로 42건, 총 616억원 규모의 대출을 실행했다. 이 중 11개 차주는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전·현직 대표 또는 대주주로 등재된 사실이 있는 법인과 개인사업자로 총 454억원(23건)의 대출이 취급됐다. 해당 친인척이 대출금의 실제 자금사용자로 의심되는 9개 차주 대상 162억원(19건)의 대출을 포함할 경우 총 616억원(42건)으로 늘어난다. 금감원은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관련 업체를 통해 대출을 받은 뒤 원리금을 대납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금감원이 부적정 대출로 파악한 규모는 350억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부적정 대출은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냈는데도 별도 사실 확인 없이 대출해주거나, 부적절한 담보나 보증인을 근거로 대출해주는 식으로 이뤄졌다. 지난달 19일 기준 부실대출은 269억원으로, 우리은행은 손실예상액을 82억~158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감원은 제재 절차를 진행하는 한편 위법 혐의 등에 대해서는 수사 기관에 별도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대출이 실행된 시점은 손 전 회장이 회장직을 연임하던 시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 손 전 회장 친인척 대출을 주도한 우리은행 전 선릉금융센터장이 어떤 이유로 대출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했는지 수사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경영진 바뀐 후에도 대출 계속…후속대처는 미흡
부당대출은 우리은행 자체 검사에서 드러났다. 본부장(전 선릉금융센터장)이 지난해 12월 퇴임한 이후, 그가 취급한 과거 여신 업무 적정성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우리은행은 관련자 책임을 엄정히 묻는 한편 유사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부당여신에 대한 인터넷·모바일 등 다양한 내부자신고 채널 확대 △반복적 여신심사 소홀 영업점장에 대한 여신 전결권 제한 및 후선 배치 △여신 사후관리 강화 등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대출 실행이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 취임 시기와도 겹친다는 점이다. 임 회장은 지난해 3월, 조 행장은 지난해 7월 취임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대부분의 대출이 실행됐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난 1월까지 취급된 여신은 기존 거래업체에 대한 추가여신과 담보부 여신 등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 경영진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후속 대처도 미흡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1월과 5월 관련 조사를 벌이고 본부장 1명만 면직 처리하고 나머지는 감봉 등 내부징계만 했다. 금감원이 지난 6~7월 현장조사를 끝낸 뒤인 지난 9일에서야 문제가 된 직원들을 뒤늦게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승계절차 내달 시작…커진 내부통제 중요성
내부통제가 은행장 연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 상황에서 조 행장은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승계 절차는 내달 본격화된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은행권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CEO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경영승계절차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에 대한 사회적 질타가 커지며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권에 내부통제를 재차 강조해왔다. 특히 우리은행은 경남지역 지점 대리급 직원이 고객 17명 명의로 대출을 신청해 177억7000만원을 챙긴 사건이 불거진 지 한 달여만에 또다시 내부통제 리스크가 재발, 뼈아픈 상황이다.
금감원은 “지주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체계에서 지주 및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금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회장이나 행장이 여신 과정에 개입할 수 없는 구조다. 일단 임직원 면담 과정에서는 손 전 회장 개입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만약 불법 정황이 드러나면 엄정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 회장은 “전적으로 저를 포함한 여기 경영진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금융그룹은 12일 임 회장 주재로 조 행장을 미롯해 지주사 및 우리은행 전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임원 회의를 열었다. 임 회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금융에 변함없는 신뢰를 가지고 계신 고객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조 행장 역시 “은행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규정과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에 기반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통해 정도경영을 확고하게 다져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