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한미연)이 국내 30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EPG 경영’ 평가 결과 기업들의 인구위기 대응 평균 점수가 미흡한 수준인 55.5점(100점)으로 조사됐다. 특히 건설업은 51.1점으로 인구위기 대응에 제일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의 ‘인구위기 대응 우수기업 기초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첫 EPG 평가를 진행한 뒤 ‘베스트 100 기업’을 공개했다. EPG 경영은 기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사회(S) 지표를 인구위기 대응(P) 지표로 대체한 새로운 평가 기준이다.
연구원은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자산총액 1조원 이상인 국내 300개 기업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들 기업의 △ 출산·양육지원 △ 일·가정 양립지원 △ 출산장려 기업문화 조성 △ 지역사회 기여 등 네 가지 부문의 17개 세부 지표를 평가했다.
평가 결과 300개 기업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55.5점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은 출산·양육지원 52점, 일‧가정양립지원 75.9점, 출산장려 기업문화 조성 55.1점을 기록했으나 지방소멸 대응은 21.3점으로 저조했다.
총점이 가장 높은 기업은 삼성전기로 85.3점을 기록했다. 이어 롯데정밀화학(83.8점), 신한카드·KT&G·KB국민카드(각 80.9점), 국민은행·삼성전자·한국가스공사·제주은행·효성첨단소재(각 79.4점) 등이 뒤를 이어 10위권에 들었다.
평가 결과 300개 기업은 임직원 육아 지원, 직장 내 어린이집 운영 등 법적 의무 사항은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성 의무 육아휴직 제도’는 극히 일부 기업들만 시행하고 있었다. 배우자 출산 휴가도 법적 의무만 충족하고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으로 조사됐다.
특히 출산·육아휴직 후 복귀하는 직원들이 경력을 유지하며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복직자 온보딩 지원제도’는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연은 주 양육자 역할을 여성에 국한하지 않고 남녀 모두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근로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11개 업종별로 살펴보면 IT부품·하드웨어, 반도체 및 기계부품 제조업 25개사가 평균 60.5점으로 가장 우수했다. 이들 기업은 ‘출산·양육 지원’ 부문 중 양육 단계 지원 점수가 11개 업종 중 가장 높고 지방소멸 대응 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다만 남성 임직원을 위한 출산·양육 지원 정책이 미흡한 수준이었다.
이어 △ 금융업 60.2점 △ 제조업-화학 59.7점 △ 사업서비스업 및 IT, 통신업 59.4점 △ 오락, 문화, 운수 및 숙박업 58.3점 △ 금융지주 57.4점 △ 제조업-자동차‧운수장비 및 부품56.3점 △ 도매 및 소매 55.7점 △ 제조업-유틸리티 및 에너지 53.9점 △ 기타 제조업 52.9점 △ 건설업 51.1점 순으로 조사됐다.
건설사는 16개사 기초평가 점수 평균 51.1점으로 11개 업종 중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전체 순위 100위권에든 건설사는 현대건설(46위), DL이앤씨(46위), 롯데건설(72위), GS건설(88위), 포스코이앤씨(100위) 4곳에 불과했다. 건설업는 현장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과 계약직 고용 형태가 많아 고용 안정성이 평가 지표로 포함된 ‘출산장려 기업문화 조성’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남성 임직원을 위한 출산‧양육 지원 정책과 여성 고용 관련 정책이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인구가 줄면 당장 기업들이 인력난에 직면할 텐데도 기업들의 인구위기 대응이 부족하다”며 “인구위기 대응 점수가 높은 기업이 늘어날수록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근로 환경과 문화가 조성되고 저출산 회복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고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며 기업의 인적자본 투자에 대해서도 세액공제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남성이 휴직하고 아이를 키워보면 양육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며 “기업에서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제도 정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