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집권 자민당 신임 총재가 102대 총리로 공식 선출됐다. 이시바 신임 총리는 한일 역사와 관련해 전향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일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주목된다.
1일 NHK에 따르면, 이시바 신임 총리는 이날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열린 총리 선출 투표에서 각각 과반 표를 얻어 102대 총리로 공식 확정됐다.
지난 1986년 돗토리현에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시 최연소로 당선됐던 이시바 신임 총리는 이후 12선에 성공하며 40년간 정치인으로 지냈다. 총리와는 인연이 없어 2020년까지 총 네 차례 선거에서 졌지만, 4전 5기 끝에 총리직에 올랐다.
이시바 신임 총리는 집권 자민당 내에서 비교적 한일 협력을 중시하는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다. 한국 내에서도 한일 간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 “문제 해소에 가장 긍정적인 후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그는 지난달 6일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기본적으로 지금 한국 정권과의 신뢰 관계는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한반도 역사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있다. 나라의 일을 모르고 일한 관계를 가볍게 논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시바 신임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国)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일왕이 참배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일단 참배하지 않을 의향을 밝혔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손해배상 판결에 대해선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일본이 식민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런 행보로 볼 때 이시바 체제에서 한·일 관계는 온건한 분위기 속에서 협력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시바 신임 총리는 비교적 한일 관계에 유연했던 ‘기시다 노선’을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총 12차례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일 정상회의 연례화 등 양국 관계 개선에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노선을 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추진되는 각종 협력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다만 이시바 신임 총리는 영토와 안보 문제에 관해선 ‘매파’라는 평가를 받는다. 방위상을 역임한 그는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을 주창하는 등 안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이런 점에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 등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가능성도 있어 한국을 비롯해 주변국과 갈등을 빚을 소지도 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맞섰던 자민당 비주류인 이시바 신임 총리가 새 내각을 측근 의원과 무파벌 인사로 구성한 점이 주목된다. 자신을 포함해 각료 20명 중 12명이 기존 파벌에 속하지 않았다. 작년 말 터진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인물들이 많은 ‘아베파’ 출신 의원들은 각료직에서 모두 배제됐다. 또 각료 중 13명은 이전에 각료를 지낸 경험이 없는 인물들이다. 이는 정치자금 스캔들과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서 쇄신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측근 안보 전문가도 내각에 중용했다. 외무상에 총재 선거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이와야 다케시 전 방위상을, 방위상에는 나카타니 겐 전 방위상을 각각 기용했다. 관방장관 자리에는 총재 선거 결선 투표에서 자신을 지지한 옛 ‘기시다파’ 2인자이자 총재 선거 경쟁자였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을 유임시켰다.
내각 출범과 함께 일본 정치권은 총선 체제로 본격 전환한다. 이시바 신임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새 정권은 가능한 한 일찍 국민 심판을 받는 게 중요하다”며 중의원을 조기 해산해 오는 27일 총선거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장 최근에 총선이 실시된 것은 3년 전으로 기시다 정권 때인 2021년 10월이다.
우리 정부는 이시바 신임 총리의 선출을 축하하고 한일 관계의 발전을 기원했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우리 정부는 이시바 신임 총리와 새로운 내각과 긴밀히 소통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 간 안보·경제·글로벌 어젠다 등 모든 분야에서 한 단계 발전된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만들기 위해 일본 정부와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시바 신임 총리의 취임을 축하하며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바탕으로 양국 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