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리도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에 딸린 섬이에요. 섬의 생김새가 겨울 철새인 고니(白鳥)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요. 삼덕항에서 배를 타고 6분 정도 들어오면 곤리도가 보여요. 비탈을 따라 민가들이 늘어서 있죠. 저희 부모님도 여기서 민박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산 중턱에는 제가 다니는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이 있어요. 저는 이 학교에 유일한 재학생인 초등학교 6학년 이지미(13)라고 해요.
제가 졸업하고 나면 학교는 결국 폐교가 된대요. 곤리도는 늘 따분한 곳이었어요. 좋아하는 인생네컷(즉석 셀프사진관)도 없고, 마라탕도 없고, 방탈출게임방도 없거든요. 섬에 어둠이 찾아오면 침대에 누워서 게임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중학교에 입학해 뭍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커요.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추억이 서린 곳들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앗, 여기에 제 얼굴이 있네요. 볼 때마다 민망해요. 주말이면 마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요. 관광객들을 위해서 마을의 명소 몇 군데를 소개하는 ‘곤리도 스탬프 투어’를 운영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 얼굴을 찍어가더니 여기에 사용했지, 뭐예요. 평소에는 민망해서 모른 척한답니다.
동네에는 어르신들이 주로 살고 있어요. 당연히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친하답니다. 엄마 말로는 어릴 때 어르신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는데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무작정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봤어요.
노인회장 할아버지가 보이네요. 저를 보면 늘 과자를 주셔서 친해졌어요. 이날은 산책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찍어 봤답니다. 마당에 앉아 계신 분은 저랑 가장 친한 할머니예요. 제가 좋아하는 고양이 나비가 살고 있어서 자주 놀러 가곤 해요. 할머니는 제게 고양이를 데려가라고 하시는데, 엄마가 허락해 주지 않아서 슬퍼요.
곤리도를 지키는 솟대예요. 어른들이 그러는데 예로부터 솟대와 벅수(장승)가 이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대요. 기둥 색이 제가 좋아하는 아이보리색이라 마음에 들어요. 이 솟대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서 태풍이 와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하답니다. 저희 마을의 자랑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고양이 지니예요. 방파제와 구판장 사이를 오가면서 저만 보면 몸을 비빈답니다. 지니는 밤이 되면 골목길 사이로 숨어들어 가요. 아무래도 탁트인 항구는 몸을 숨길 수 없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나 봐요. 저도 학교를 마치면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요. 땅거미를 피해 걷는 모습이 꼭 저와 비슷해서 찍어봤어요.
구방파제로 가는 길이에요. 이날 국어 시간에 '우리 동네 환경 지키기'를 주제로 논설문을 썼던 게 생각났어요. 곤리도는 유명한 낚시 명소랍니다. 저희 아빠도 20년 전에 낚시를 하러 처음 섬에 들어왔대요. 그러다가 섬의 매력에 빠져서 벌써 10년째 민박을 운영하는 곤리도 주민이 됐답니다.
문제는 낚시꾼들이 이곳 방파제 앞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소변을 눠요. 마을에 쓰레기통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데, 잠깐 편하게 지내자고 제가 사랑하는 섬을 함부로 대하는 게 안타깝고 서운해요.
제가 찍은 사진들은 교실 뒤에 있는 게시판에 잘 정리해서 붙여둬요. 이건 가을 동안 찍은 사진들이에요. 사진작가 선생님과 암실에서 필름 사진을 인화하고, 아이스링크장에서 본교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탔어요. 이날 찍은 사진들을 포함해 다가올 겨울의 추억도 차곡차곡 쌓아볼 생각이에요. 내년 봄이 오면 저는 학교를 떠나겠지만, 사진만은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