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에는 삼성사업장이 각각 있다. 천안은 시청 부근 백석동에 삼성SDI와 삼성디스플레이가 함께 붙어 있다. 아산은 배방읍에 삼성전자 ‘온양반도체’, 탕정면에 삼성디스플레이가 서로 떨어져 있다.
SDI는 2차전지, 디스플레이는 LCD(액정화면)를 만들고, 전자는 반도체를 패키징(조립)한다. 오랫동안 글로벌 최첨단산업인 반도체는 온양반도체만 관여했다. 그런데 이제 ‘천안반도체’가 생길 전망이다. 이렇게 긴 설명을 한 건 주민들에게 쉽게 삼성사업장을 파악시키기 위해서다.
천안서 디스플레이 LCD라인이 완전히 빠진다. 그 자리에 ‘AI반도체’로 불리는 고성능 반도체 패키징 라인(설비)이 들어선다. 지난 12일 충남도청서 박상돈 천안시장이 김태흠 충남지사, 남석우 삼성전자 사장과 함께 천안반도체 설비 증설 투자협약을 맺었다. 기업이 공장을 늘리는데, 왜 천안시와 충남도가 들러리설까 궁금할 수 있다.
왜냐면 세계 관심이 쏠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천안에도 자리잡겠다는 ‘공식선언’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글로벌 대세 산업인 AI(인공지능)에 꼭 필요한 HBM(High Bandwidth Memory, 高帶域幅메모리) 최신제품을 천안서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 주식이 곤두박질친 것도 반도체 때문이었다. HBM분야서 SK하이닉스에 한 걸음 뒤떨어졌다. 엔비디아 등 AI반도체 큰 거래처를 놓친 것이 영향을 끼쳤다. 삼성으로선 반도체서 큰 돌파구를 뚫어야 하는 절박한 시기다. 그 모멘텀을 천안서 만들겠다니 시가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쪼잔하게 향후 삼성전자의 HBM수출로 천안시가 얻는 법인세 액수를 논하진 않겠다. 지역에 끼치는 삼성 영향력을 2000년대 초부터 봐왔다. 온양반도체와 천안사업장 외에 2004년 삼성전자가 아산 탕정에 LCD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LCD라인 설치를 위해 일본 기술자들이 대거 아산으로 왔다. 그런데 이들을 재울 숙박시설이 부족해 평택 등서 전용버스로 출퇴근 시켰다.
이후 지역 거주 삼성 직원이 늘면서 천안·아산 아파트 분양 시장도 활황기를 맞았다. 사교육, 레저 등 전 분야가 꿈틀댔다. 삼성 월급날이면 지역이 흥청댔다. 음식값을 이들이 올려놨다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며칠 전 삼성전자-천안시 협약에 따르면 2027년까지 천안 백석동 제3산업단지내 삼성디스플레이 28만㎡(약 8만평) 부지를 ‘임대’해 최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정 설비를 구축한다. 삼성 천안사업장은 총 15만평. 7만평은 SDI가, 8만평은 디스플레이가 사용해 왔다. 디스플레이는 전자 LCD부문이 커지면서 2012년 떼 내 만든 ‘삼성전자 동생’이다. 그런데 LCD생산이 탕정사업장만으로 충분해, 오래전부터 천안사업장을 놀리고 있었다.
그래서 2018년부터 반도체 패키징 설비가 천안사업장으로 슬금슬금 들어왔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HBM2 공정 설비에 수천억원을 투입해 온양사업장과 다른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한다”고 했다. 이듬해 8월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천안사업장 패키징 라인을 둘러봤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적층, 積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향상시킨 메모리 제품이다. 수직으로 8단, 12단을 쌓아올려 16단 이상 단계까지 왔다. 이른바 6세대 HBM4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활을 걸고 더욱 얇게, 높게 쌓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본딩(Bonding)’ 새 제조방식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회사는 D램 본딩[접착] 방법을 특수액체나 필름으로 달리 쓴다.
삼성은 이를 위해 이미 작년 말 1조원 규모 장비를 발주했다. 삼성은 급하다. 내년 말 HBM4를 천안사업장서 양산한다는 목표다. 근데 SK하이닉스는 7세대 HBM4E를 2026년 양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따라잡으려면 삼성은 천안서 역전(逆轉)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렇게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천안서 ‘반도체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