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 동력도 상실한 분위기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의 연금개혁안 발표 역시 계엄 사태처럼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민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2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발표한 과정을 보면, 지금 윤 대통령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면서 “총선이 끝난 뒤 전문가 자문조차 거치지 않은 정부안을 공개했다. 공론장에서 채택되지 않은 것을 밀실에서 만들어 던져놓은 개혁안”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4일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혁안을 두고 이같이 비판한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로 조정,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내용이 담긴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남 교수는 그간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관한 논의가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동조정장치는 기금 고갈이 예상될 경우 자동으로 납부액을 올리고 수령액을 줄일 수 있는 제도다. 장치 도입에 관해서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회의에서 의제로 다뤄진 바 없다는 것이 남 교수의 설명이다.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에서도 의제로 채택되지 않았다.
남 교수는 정부의 연금개혁안을 두고 “연금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그는 “재정계산위 회의를 47번 넘게 했는데, 자동조정장치는 의제로 한 번도 채택된 적이 없다. 한 위원이 주장했으나, 나머지 위원은 모두 반대했다. 연금특위 공론화위에서도 의제로 올라가지 않았다”면서 “공론화를 거친 개혁안이 나왔으면 이를 수용해야 민주 정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계엄이 성공했다면,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혁안을 밀어붙이지 않았겠나”라며 “세대별 차등 보험료율 인상,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모두 정부 입맛대로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현재 계엄 사태 후폭풍으로 인해 연금개혁 논의는 진척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10일 탄핵 정국 속에서 정기 국회가 마무리 되면서, 올해 연금개혁 논의는 물 건너간 모양새다.
연금개혁 자체가 좌초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정국이 언제 안정될지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2026년 지방선거 및 재보선, 2027년 대선, 2028년 총선 등 3년 연속 선거가 예정돼 있는 만큼, 연금개혁도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지난달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브리핑에서 “내년부터는 선거가 3년 이상 지속돼 올해를 지나면 어려운 면이 많다”면서 “금년 내 연금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연금개혁이 미뤄지면서 기금 고갈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금개혁이 지연될수록 하루에 885억원 정도의 연금 부채가 쌓이는데, 1년이면 32조원에 달한다. 현 제도가 유지되면 3년 뒤엔 국민연금 역사상 처음으로 연금 지급을 위해 기금을 헐게 되고, 오는 2056년엔 연금 곳간이 바닥난다.
정국 안정을 통해 연금개혁 논의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남 교수는 “정치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연금개혁 언급도 힘든 상황”이라며 “정국이 안정돼야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