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
서울 학부모들이 8학군을 가기 위해서 강남으로 이사 후 스카이(SKY)대학을 보냈듯이, 현재 평양에서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 중구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북한의 교육은 단순히 지식 전달을 넘어, 체제 유지와 사회주의 이념 강화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북한은 2012년부터 12년제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4년으로 구성된다.
교육 과정은 과학기술, 수학, 문학 등의 일반 교과 외에도 김일성·김정일 혁명 역사, 주체사상과 같은 정치사상 교육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충성을 심어주고,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주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북한의 교육은 단순히 사상 교육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에는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주력하며, 첨단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김정은 시대 들어 더욱 강조되고 있는 부분으로, 북한의 경제적 자립과 군사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 할 수 있다.
1. 영재교육: 엘리트 양성을 위한 특권적 시스템
중앙당 간부들과 특권기관 산하 무역회사 사장들은 중구역을, 신흥 자본가 세력은 평양에서 김일성종합대학교, 김책공업종합대학교, 평양외국어대학, 평양의과대학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탁아소부터 유치원, 고등중학교 교육에 있어서 엘리트 교육 프로세스를 밟고 있다.
금성 제1고등중학교를 가려는 이유는 이곳을 나오게 되면 대부분이 김일성종합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일반적인 중고등학교 과목을 배우고 오후에는 평양학생소년궁전이라는 곳에서 IT기술, 수학, 과학, 음악(악기), 미술, 무용 등 특기를 북한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님으로부터 배운다. 이러한 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대부분 평양외국어대학이나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과나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명실공히 명문 중고등학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학교들은 중앙당간부들 자녀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평양외국어대학에는 중앙당 부부장이상급의 자녀들만 가게 된다. 졸업 후에는 대사관으로 해외에 나가거나 무역회사 사장으로 근무할 수 있어서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나와서 중앙당 간부를 다시 대물림을 받게 된다.
금성 제2고등중학교는 만경대구역에 위치해 있는데 전국에서 인재를 뽑아서 교육하는 곳이다. 체계는 금성 제1고등중학교와 비슷하다. 금성 제2고등중학교에서 오전에는 일반적인 중고등학교 과목을 배우고 오후에는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IT기술, 트랙터·자동차 운전, 음악(악기), 미술, 무용, 체육 등 특기를 배운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평양음악무용대학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상업대학, 평양컴퓨터기술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이러한 영재교육은 북한 정권이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국제적 고립을 극복하고 자립 경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특히 미사일 개발이나 핵무기 연구와 같은 군사적 목적을 위한 인재 양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 사교육과 과외: 공교육의 한계를 보완하는 비공식 교육
북한은 공식적으로 사교육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교육과 과외가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 이는 공교육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개인 교사를 고용하거나 비공식적인 학습 모임을 조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교육은 주로 외국어(특히 영어와 중국어), 수학,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며, 일부 부유층 가정에서는 음악이나 예술 과목까지 포함한다. 과외비용은 일반 주민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지만, 중앙당 간부나 상류층 가정에서는 이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이 충분하다. 권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봄 모내기 동원과 가을걷이 동원에 자녀들을 제외시키고. 그 기간 사교육을 바탕으로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교육은 북한 사회 내 계층 간 교육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 중앙당 간부 자녀와 특권층의 교육 독점
북한 중앙당 간부나 고위직 관료의 자녀들은 일반 주민 자녀들과는 다른 차원의 교육 기회를 누린다. 이들은 금성고등중학교, 평양 제1고등중학교와 같은 명문 학교에 입학하거나 외국어 전문학교 등 특수학교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해외 유학 기회를 얻기도 하며, 이는 주로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우호국에서 이루어진다.
특권층 자녀들은 공교육 외에도 개인 교사를 통해 맞춤형 교육을 받으며, 대학 진학에서도 우선권을 누리며, 대학 졸업 후에는 특권기관에 취업이 가능하다.
●중앙당 : 출신 대학을 분석해 보면 김일성종합대학교 50%, 김책공업대학교 20%, 평양외국어대학 2%, 기타 28%이다.
●무역회사 사장 : 김일성종합대학교 50%, 김책공업대학교 20%, 평양외국어대학 10%, 기타 20%로 이다.
●내각(성) : 김일성종합대학교 60%, 김책공업대학교 20%, 한덕수경공업대학교 10%, 기타10%이다.
●검사, 판사 : 김일성종합대학교 90%, 보위부, 안전부출신 10%이다.
●보위부, 안전원 : 보위부는 보위사령부나 무역부 군인출신이 90%, 민간10%, 보위부대학을 졸업해야 하며, 안전원은 보안성 군인출신이 50%, 보안성정치대학을 통해 50% 선발한다.
이러한 특혜는 북한 사회 내 계층 간 격차를 더욱 고착화하고 있으며, 일반 주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4. 대학 입시와 수능: 경쟁 속에서 드러나는 불평등
북한에서도 대학입시는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진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북한의 대학입시는 한국의 수능과 유사한 시험 체제를 기반으로 하지만, 시험 성적뿐만 아니라 정치적 배경(출신 성분)과 당에 대한 충성도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한다.
평양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인민위원회 교육과에 있는 각자의 문건이 필요하다. 이 문건은 입시생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고조할아버지의 출신성분(북한에선 ‘토대’라고 한다)에 대한 자료다. 토대가 중농이나 지주이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평양에 있는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가 없다. 지방에 있는 석탄전문대학이나 가야 한다.
반면에 할아버지가 고농(머슴), 빈농이라면 자녀들은 김일성종합대학, 보안성정치대학, 평양외국어대학과 같은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이는 1970년대에 전국적으로 중농(5정보 미만의 땅 소유자), 지주(5정보 이상의 땅 소유자)의 유능한 사람들을 정치범관리소로 추방했고, 고농(머슴), 빈농(땅이 없는 농민) 출신을 중앙당 자리에 앉혔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중앙당 간부들은 고농, 빈농 출신이어서 계속해서 신분 관련 문건을 이용해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대대손손 중앙당의 꽃보직을 대물림한다.
또 하나는 대학입시 성적이다. 대학입시는 우리나라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 유형이 아니라 주관식과 단답형 문제가 출제된다. 주관식은 교수가 답안지 하나하나를 채점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입시 비리가 생겨난다.
대학의 학장들은 대학 정원의 20% 정도는 자신들이 원하는 학생들을 뽑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 시험문제가 주관식이기 때문에 시험지를 바꿔치기할 수 있어서 공정한 룰보다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양의 대학 학장들은 뇌물을 받아서 대부분 부유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김일성종합대학교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교, 평양외국어대학 같은 명문 대학에 진학하려면 뛰어난 학업 성적뿐 아니라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한다. 이는 곧 고위층 가정 출신 학생들이 더 나은 기회를 얻는 구조로 이어지며, 일반 주민들에게는 사실상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작용한다.
5. 교육을 통해 드러나는 북한 사회의 단면
북한의 교육 시스템은 체제 유지와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설계되어 있으며, 영재교육과 사교육 현상을 통해 그 본질이 드러난다.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교육 현실은 계층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중앙당 간부 자녀와 같은 특권층이 우수한 교육 기회를 독점하는 구조는 체제 내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북한의 교육은 단순히 학생들의 학문적 성취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체제 유지와 권력 구조 강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내부 갈등과 불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