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흔들어놓은 이재명의 변신 [조희연의 공존사다리]

판을 흔들어놓은 이재명의 변신 [조희연의 공존사다리]

이재명의 변신은 무죄다?
글‧조희연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기사승인 2025-03-03 06:00:07 업데이트 2025-03-03 11:56:44
조희연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사진=쿠키뉴스DB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신’이 화제다. 민주당이 ‘중도보수정당’이라는 이 대표의 말에 당내 비명계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국민의힘은 대선용 위장 전술이라는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80년대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시대착오적 문장이지만, 어쨌든 그 ‘변신’은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변신’은 변화에 비해서 조금 더 급진적 표현이다. 용어만 놓고 본다면 변화는 그 전과 후의 달라짐이 크지 않지만, 변신은 부정적 뉘앙스를 담지만 탈바꿈 수준으로 달라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정치권에서는 비판적 시각에서 변신을, 긍정적 평가에서는 변화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사실 변신이건 변화건 각자가 놓인 위치에 따라 정치적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잉 악마화’의 시대, 내용에 집중해야

당연히 비판이나 공격은 누구에게나 어느 상황에서도 가능하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시점에 변신이라는 외형적 변화 뿐 아니라, 그에 내포된 ‘내용적 변화’에 주목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지구촌으로 확산되는 ‘적대적 진영정치’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시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촌에 만연한 적대적 진영정치는 상대를 ‘악마화’하다 못해 ‘과잉 악마화’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과잉 악마화란 ‘소설을 써서라도’ 적대자를 극단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악마화 된 이미지는 단톡방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공유되며, 정치적 동질성을 형성하는 집단 내에서는 합의나 상식, 신념으로 통용된다.

최근 논란이 되는 이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을 보자. 이는 기존 민주당의 위치라 여겨졌던 좌측으로의 변화가 아닌, 민주당의 대척점에 있던 국민의힘 방향으로 한 발 내딛는 변신에 가깝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특수상황에 대응하는 변신이기는 하지만, 한동훈 등 국민의힘 국회의원 8인의 계엄해제 찬성 표결은 지금까지의 자신들로부터는 큰 변신이었다. 

변신에 대한 다른 접근법

적대적 진영정치 하에서 반대편의 변신이 내용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변신’일 경우에는 그것을 공격하는 접근법도 가능하지만, 액면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접근법도 필요하다. 그러한 변신이 적대적 진영 간의 ‘공통분모’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에서 승패를 가르는 투쟁은 여전하겠지만) 공통분모가 생긴다면 정치의 적대성은 완화되고, 공통의 사회적 기반이 확대된다.

어느 진영이든, 지금까지와 같이 적의 변신(또는 변화)에 대해 본질적 비판으로 일관하기보다 자신의 정치적·전략적 의도에 맞추어 ‘활용’하는 접근을 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어쩌면 그것이 극단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사회 공통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의 발로다.

역사적 사례 : 김대중의 변신

역사적 사례도 있다. 강준만 선생이 치열하게 분석하고 고발했듯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한 것은 지역주의 망령이었다. 그 망령이 가장 힘을 떨쳤을 때, 폭풍의 중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진보의 상징이자 호남의 상징이었고, 보수정당은 지역주의적 편견에 기대어 그를 악마화 하고 공격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다.

보수진영은 그가 대립각을 세울 때면 ‘공격적 본성’이 발현되었다하고, 그가 유화적이고 타협적 스탠스를 취할 때면 ‘전라도식 이익추구’라며 영악한 정치적 변신으로 폄하했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니, 어떻게 해도 김 대통령은 ‘나쁜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변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지도자로서 외환위기를 극복해냈다. 만약 반대진영이 다르게 접근했다면 우리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재명의 변신이 불러올 지형변화

다시 이재명 대표의 변신으로 돌아가 보자. 이 대표의 ‘중도보수’ 표방은 민주당의 ‘내용’적 변화와 변신을 내포한다. 대선을 대비한 의도적, 전략적 변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접근법에 따르면, 이 대표의 변신이 야기하는 ‘지형변화’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나는 민주당이 진보나 중도보수의 ‘단일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방 시기의 민주당,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과정에서의 민주당, 21세기 집권정당으로서의 민주당까지 민주당은 시기에 따라 그 지배적 정서와 정체성이 조금씩 변화해 왔다. 민주당의 역사는 (독재에 부역하는 극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진영을 연합하는 연합운동의 성격이 강했고, 당연히 그 정체성도 단일하기보다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이었다. 당연히 재정의 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진보 역시 민주당의 복합적 정체성에 여전히 내재한다고 판단한다.

이 대표의 발언으로 민주당이 중도보수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갈수록 그 좌측에 있던 ‘진정한 진보’의 공간이 확대될 수도 있다. 이미 민주당 내의 비명계가 하고 있는데, 진보와 보수가 무엇인가를 정책적, 이념적으로 따지게 될수록 ‘친명 대 반명’ 식의 ‘눈살 찌푸리는’ ‘사적(私的)’ 대립구조가 아닌 정당한 이념적·가치적 논쟁이 되는 것이다. 거대 양당과 그 주도세력 간의 이분법적 구도가 깨지고 진보와 중도, 보수 모든 영역에 조금씩 새로운 세력과 정당이 움직일 공간이 생길 수도 있다. 지구촌에 편만한 적대적 진영정치의 양극화 구도가 한국에 착근할 수 있는 위기를 느끼는 현 국면에서, 우리 사회 정치지형의 새로운 ‘판 정리’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확장연합

한걸음 더 나아간 다른 소망도 가져본다. 기왕 진보냐 보수냐 하는 논쟁이 전개되는 마당에, 향후 새로운 연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전환적 사고가 그것이다. 탄핵 이후의 국면은 비상계엄 이후 지금까지 해쳐온 길만큼이나 역동적인 전개로 나아갈 것이다. 대선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존의 진보 대 보수 구도에만 의존한다면 전략·전술적 선택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97년 대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P 연합’을 떠올리자. 기존 구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역사적 변신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단적 보수가 과거의 ‘동원 대상’에서 (여전히 동원적 성격이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발적 대중운동’으로 변모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보수가 극우화되고, 극우가 주류정당이 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파시즘적 성향’의 대두에 맞서 이전과는 다른 폭넓은 민주주의 연합전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수호를 넘어 ‘공화주의적 사회대개혁’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우리가, 더욱 폭넓은 ‘민주공화대연합’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적 발전은 권위주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세계시민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일궈온 한국 민주주의가 퇴행의 위기를 마주한 시점에, 우리는 다시 세계에 영감을 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음모론적 ‘과잉 악마화’보다 각자의 변신을 긍정적 요소로 인정하고 활용하여 공존과 공통의 기반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은 판을 흔들었다. 그것도 아주 크게. 이를 기회로 한국사회가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조금 더 건설적인 담론이 형성되길 바란다. 진정으로 그렇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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