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일부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반중(혐중)’ 정서가 심화하고 있다. 집회 인근을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향한 집회 참여자들의 고성 또한 커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체감하는 위협 수준 또한 높아지는 분위기다.
19일 오전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인근에서 “시진핑 아웃” “중국 공산당” “스톱 차이나”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안국역 인근 북촌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꼽힌다. 지역 특성상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일부 시위자들은 국가와 상관없이 외국인 관광객이 지나갈 때마다 더 큰 목소리로 해당 구호 등을 외쳤다.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던 한 외국인 관광객은 자녀를 인도 안쪽으로 이동시켰다. 상황을 모르는 듯한 아이들은 서툰 한국말로 “스톱 차이나” “탄핵 각하” 등을 외치면서 웃어 보이기도 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위자들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과격해지는 시위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점이다. 필리핀 관광객 아마이(52·여)씨는 “처음 시위를 봤을 때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미국인 관광객 줄리아(40대·여)씨도 “한국 오기 전에 탄핵 정국과 계엄령 이야기는 들었지만, 관광지 바로 옆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하며 놀랐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영어로 적힌 전단까지 등장했다. 전단에는 ‘중국의 공격에 저항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헌재 인근 가로수와 전봇대 곳곳에 해당 전단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지나가던 외국인들은 멈춰 서 해당 전단을 읽어보기도 했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글이 담긴 전단은 관광객 사이에 급속도로 퍼졌다. 아마이씨는 “중국과 북한이 잘못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어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단 내용을 보니까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외국인 관광객들은 시위대가 나눠준 피켓 등을 기념품으로 챙겨가기도 했다. 미국에서 아이와 함께 관광을 온 제시카(48·여)씨는 “여기(헌법재판소)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기념품으로 가져가려고 받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애런(23)씨도 “누군가가 전단을 건네줘서 받았다”며 “전단 내용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워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외국인 관광객을 향한 시위대의 강압적인 언행이 결국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외국인 관광객이 시위대를 지나가는 것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받은 관광객들은 방문을 꺼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위가 계속해서 길어질 경우 관광업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보통 해외여행을 하기 2~3개월 전에 예약한다. 지금 예약하는 사람들은 여행 성수기인 5~6월에 오는 관광객”이라며 “시위가 길어지면 여행 성수기에 북촌 주변 관광이 저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