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정부의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정책 번복으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도록 주문하면서, 은행들은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불과 한두 달 전 가계대출 문턱을 낮췄던 은행들이 다시 주택담보대출을 조이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됐기 때문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일제히 다주택자 대상 주담대 문턱을 높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 19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며 수도권 지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예고한 데 따른 조치다.
하나은행은 오는 27일부터 서울 지역에 한해 1주택 이상 보유자의 구입 목적 주담대를 막는다. 다주택자의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전세대출)의 신규 취급도 중단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최근 서울 지역 내 주택가격 및 거래량 급증에 대해 선제적인 정책 시행을 통해 갭투자 방지 및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은 이날부터 서울 지역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을 중단한다. SC제일은행도 오는 26일부터 2주택 이상 보유 차주의 생활안정자금 대출 신청·임차 반환자금·타 은행 대환대출·추가 대출을 제한한다. 우리은행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에 한해 1주택 이상 보유한 유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할 방침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시행 일자는 최종 조율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KB국민·신한은행은 이미 수도권 1주택자에 대한 주담대를 제한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미 다주택자 대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추가적인 조치는 없다”면서 “다만 정부가 토허제 지역 확대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향후 주담대 관련 MCI·MCG(모기지 신용보험·보증) 중단 등의 추가 제한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면밀히 감시하며 추가 대출 규제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1분기 가계대출 증가율이 관리 목표를 초과하는 금융사의 경영진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다주택자 주택구입·갭투자 등 투기적 요소를 차단하도록 금융사의 자율 관리 조치를 강화하겠다”며 “1분기 자체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초과하는 금융회사는 개별 경영진 면담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정책 대출이 수도권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대출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도 거론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기 수요로 과열될 우려가 있는 지역에 대해 다각적인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검토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조치에 대한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 총량 관리를 어렵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은행에 ‘자율 관리’를 요구하는 것이 당황스럽다”며 “정부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이 결국 대출 규제 강화를 초래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일관성 있는 대출관리 정책을 운용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시기별 쏠림이 없도록 연초 분기별 대출 수요를 예측하고 물량 관리 계획을 세우는데, 규제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금리 인하와 부채 관리를 병행하라고 하더니, 한 달만에 토허제까지 뒤집히면서 난감한 처지”라며 “대출만 옥죈다고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3단계를 앞두고 ‘막차 수요’가 몰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이 적용되면 대출 가능액이 줄어들어 실수요자들의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당국이 7월 도입할 예정이던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를 연기하면서 7~8월 대출 수요가 몰려 가계대출이 늘었던 전례가 있다”며 “이번에도 7월 규제를 앞두고 수요가 폭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