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이 24일 기각됐다. 헌법재판소는 본안 판단 끝에 “탄핵 사유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 결정 하나로 정치권을 둘러싼 사법적 갈등이 끝난 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은 여전히 헌재에서 심리 중이고, 제1야당 대표는 곧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국가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들이 사법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가 제 기능을 멈춘 자리에 헌재와 법원이 자리했다. 설득과 대화 대신 판결과 선고가 정국을 움직이고 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장면 하나가 있다. 헌재 앞에서 탄핵 반대를 외치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구호가 ‘탄핵 기각’에서 ‘탄핵 각하’로 바뀐 모습이다.
기각은 본안 판단 끝에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각하는 판단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다. 법조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런데도 집회 현장은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에서도 이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이 둘의 차이를 어렴풋하게나마 구분하려는 흐름이 감지된다.
법을 아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이상이다. 이것은 국민의 법률지식 향상이라기보다, 정치 부재의 단면이다. 정치가 책임져야 할 갈등을 사법에 떠넘긴 결과다.
정치권이 대화와 명분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들이 이제 법정으로 넘어가고 있다.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쟁점들은 판사들의 손에 맡겨졌다. 대통령 탄핵, 총리 탄핵, 야당 대표 재판까지, 모두가 표결이 아닌 판결로 정리되길 바라는 사회. 이는 결코 정상적인 정치의 모습이 아니다.
정치는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기각’과 ‘각하’를 구분하는 시민이 많아지는 현실을 자랑처럼 여겨선 안 된다. 헌재 앞 구호가 갈등의 종결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되어선 안 된다. 늦기 전에, 이 시국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 끝은 사법이 아니라 정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