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함께 살아갈 5년인데”…‘선거 밖’ 청소년들의 목소리

“우리도 함께 살아갈 5년인데”…‘선거 밖’ 청소년들의 목소리

기사승인 2025-06-06 06:00:09 업데이트 2025-06-06 16:35:53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29일 광주 서구 화정2동 사전투표소에서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생애 첫 투표를 위해 투표용지를 건네받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도 앞으로 5년을 함께 살아갈 국민인데, 대통령을 오로지 어른들 의견으로만 결정한다는 건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추윤서(17)양은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뉴스와 SNS는 후보의 발언과 공약, 투표율 전망 등으로 들썩였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책을 살펴보고 의견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 의견을 표로 표현할 수는 없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 중 일부는 이처럼 선거 기간 동안 정치에 관심이 있어도 배제되는 경험을 겪으며, 스스로를 ‘사회 밖’에 있는 존재처럼 느꼈다. 정책의 영향을 함께 받으며 살아가지만, 결정 과정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과 거리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 단체에서는 모의투표 등 참여 기회를 확대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제도 안에서 실질적인 권리를 갖지 못한 청소년들은 여전히 정치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

강원도에 거주하는 원모(18)양은 “미성년자라서 투표권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고, 어른이 된 후에는 유권자로서 꼭 진심을 다해 선거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모(17)군 역시 “지지하는 당이 다르면 서로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왜 저러지’ 싶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을 보면서 오히려 더 나은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청소년은 “주변 친구들도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정말 많이 이야기한다” 등 또래들 사이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다만 추양은 “이야기는 자주 하지만, 잘 알지 못한 채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치에 대한 입장이나 이해도는 다를 수 있지만, 관심 자체는 결코 낮지 않다는 데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투표 연령을 지금보다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부분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YMCA전국연맹이 지난 3월 전국 청소년 398명(2007~2013년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민주시민의식 설문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만 18세부터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59.3%로 가장 많았고, ‘더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25%로 나타났다.

원양은 “정치에 무관심한 친구들이 투표권을 가지면, 주변 말이나 유튜버 의견에 따라가게 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본인의 판단이 반영되지 않은 투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모(17)군도 “주변 친구들이 정치를 너무 가볍게 여겨서 낮추는 건 반대”라고 말했다. A(17)군은 “만 18세 이상부터 투표하게 하는 게 적절하다. 그 나이 정도는 돼야 결과에 책임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성인이 되면 꼭 투표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김군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우리나라 대통령을 뽑는 일이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했다. B(17)양도 “투표는 내 권리이기 때문에 이유를 따질 필요 없이 당연히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위한 실험적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YMCA전국대표자회와 한국청소년정책연대, 한국YMCA전국연맹은 최근 전국 17개 시도 198개 시군구에서 만17세 이하 청소년 선거인단 1만7466명이 참여한 가운데, ‘청소년 모의투표’를 실시했다. 주최 측은 “청소년 역시 자신의 삶과 미래에 관한 중요한 결정에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이라고 행사 개최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 한계는 뚜렷하다. A군은 “SNS나 캠페인 활동 등을 통해 의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어른들에게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호소했다. B양도 “현재는 시위에 참여하거나 소액 후원, 동의안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보지만, 투표권이 없어서 내 생각이나 관심이 사회에 반영되기 어렵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완전히 제도 안으로 들어서기엔 여전히 갈 길이 남았지만,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한 변화의 흐름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지난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면서, 처음으로 청소년 일부가 실제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후에도 정치 참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올해 더불어민주당은 만 16~18세 청소년 권리당원에게 대선 후보 경선 투표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청소년에게 정당 경선 투표권이 주어진 사례다. 민주당은 “정치적 기본권 행사를 위해 스스로 정당에 가입한 청소년 당원을 배려한 것”이라며 청소년들의 참여 요구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