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뇌전증 환자 전원에 헬기 도움 절실

중증 뇌전증 환자 전원에 헬기 도움 절실

글‧홍승봉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뇌전증지원센터장)

기사승인 2025-06-26 14:59:03

전주에 사는 24세 딸의 아버지는 지푸라기라고 잡기 위해 뇌전증도움전화에 연락했다. “제 딸이 뇌전증중첩증으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는데 더 이상 약이나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버지는 애가 탔다. 환자는 뇌전증 발작이 심해져서 수시로 대학병원 입원을 반복했고 중간에는 요양병원에 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 활발하게 뛰어 놀아야할 어린 딸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다. 

호남지역에는 일반적인 약물 치료만 가능한 2차 뇌전증센터 밖에 없다. 3차, 4차 뇌전증센터는 단 한곳도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건 나라가 아니다. 무늬만 대학병원이지 지역 개원의와 다를 바가 없다. 

필자는 아버지에게 아직 사용할 약이 있다고 알려드렸다. 하나는 레녹스-가스토우 증후군(난치성 뇌전증)에 투여하는 항경련제 ‘에피디올렉스’이고, 다른 약은 최근 한국희귀의약품센터가 유럽에서 구입하여 제공하는 항경련효과가 매우 높은 온토즈리(cenobamate)이다. 

하지만 신청하면 8주를 기다려야 한다. 딸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시간이 너무 없다. 신경자극술(미주신경자극술, 뇌심부자극술)도 시도할 수 있으나 호남의 대학병원들은 두 가지 모두 시행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게 한국의 상종 대학병원이란 말인가. 아버지는 딸이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길 수 없냐고 물었다. 의료대란으로 자기 병원 환자가 응급실에 와도 돌려보내는 판에 대체 어디로 안내할 수 있나. 

서울의 빅4 병원들 보다 훨씬 더 친절하고 관대할 것 같은 부산의 유일한 4차 뇌전증센터를 소개했다. 환자의 아버지는 서울로 직접 찾아와서 딸을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필자는 그 병원 뇌전증센터장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중환자 전원을 부탁했고 다행히 그 교수는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여기는 뇌전증수술과 신경자극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주에서 부산으로 중환자실 환자를 옮기는 것이 가능할까. 차로 가면 4시간 이상 걸리는데 거의 불가능하다. 헬기의 도움이 있어야 이 딸을 살릴 수 있다. 

정부는 대학병원 대신 차라리 강남베드로병원 같은 4차 뇌전증센터를 육성해라. 호남에 이런 병원이 있었다면 이 환자는 벌써 치료됐을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신체 손상과 뇌손상을 받았을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광역시에 중증 뇌전증 환자들이 갈 곳이 없는 한국 이게 나라냐.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들고 그렇게 뻣뻣하냐.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나 계획도 관심도 없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쓰러지고 죽어가고 가족도 무너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2기 뇌전증지원센터에서 광역시 지부를 설치하고 지방에 3, 4차 뇌전증센터를 육성하려고 계획했으나 뇌전증 환자들의 생명과 같은 예산을 이상한 사람들이 빼앗았다. 뇌전증도움전화는 전국에서 홀로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이 살고 있는 죽음의 바다에서 생명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부 지원도 중단되어서 역부족이다. 하지만 쓰러질 때까지 등대를 지킬 것이다. 

이재명대통령은 뇌전증 치료와 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질환들 중에 치료 환경이 가장 열악하고 젊은 환자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부산 외에는 뇌전증 전문치료센터가 전무하다. 가장 큰 경기도에도 없다. 도대체 이런 질환이 또 있는지 보건복지부는 답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