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세대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주목받는 미국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인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가 빠르면 올해 하반기에 출시될 전망이다. 마운자로가 국내 비만 치료 시장에 진입하면 이미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본격적인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약사도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며 비만 치료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릴리의 비만·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의 국내 출시일이 이르면 8월 말에서 9월 초로 점쳐지고 있다. 마운자로는 터제파타이드 성분의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IP(위 억제 펩타이드) 이중 작용제다. 미국에선 비만 적응증의 경우 ‘젭바운드’라는 별도의 제품으로 판매 중이다.
한국릴리는 유리병에 든 약물을 주사기로 추출해 사용하는 ‘바이알’과 한 달 분량의 주사를 네 차례에 걸쳐 투여할 수 있는 펜 형태의 자가 주사기 ‘퀵펜’ 제형에 대해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를 신청한 상태로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제2형 당뇨병 적응증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여부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논의 중이다.
릴리 측은 마운자로의 급여 진입과 관련해 제형 허가 여부가 논의 중인 만큼 출시 시기 등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릴리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중에 마운자로를 국내 2형 당뇨병 및 비만 환자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 당국, 학회 등 주요 이해관계자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면서도 “마운자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으로 인해 아직까지 국내 출시 일정이 가변적이다. 출시를 위한 제반 환경이 준비되는 대로 빠르게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릴리는 바이알과 퀵펜 중 재고가 더 넉넉한 물량을 도입해 공급 부족 문제를 최소화하고, 환자들의 높은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1회분을 주사기에 담아 판매하는 ‘프리필드펜’ 제형도 거론되지만, 세계적으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제형은 퀵펜이다. 마운자로가 출시된 대부분 국가에서도 퀵펜 제형으로 판매되고 있다. 퀵펜은 프리필드펜 대비 경제성이 높은 제형이다. 마운자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투약하는 치료제로, 프리필드펜의 경우 1회 사용분만 담겨 있어 한 달에 4개가 필요한 반면 퀵펜은 1개로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다.
마운자로가 출시되면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위고비와 경쟁 구도를 이루게 된다. 의약품 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위고비의 점유율은 73%에 달한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선 두 제품의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시장에 비만 치료제로 출시된 시점이 위고비(2021년)에 비해 마운자로(2023년)가 2년가량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기준 마운자로 매출(3조1400억원)이 위고비 매출(3조7300억원)을 거의 따라잡았다.
체중 감량 효과 면에선 마운자로가 위고비를 앞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운자로와 위고비를 직접 비교한 임상 3상 시험 ‘SURMOUNT-5’를 보면, 마운자로 투여군의 평균 체중 감소율은 20.2%로 위고비 투여군(13.7%) 대비 47% 높았다. 체중 감소량 또한 평균 22.8㎏로 위고비 투여군(15㎏) 보다 높았다.
두 제품의 경쟁에 더해 국내 기업까지 가세할 경우 비만 치료제 경쟁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한미약품은 GLP-1 비만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국내 임상 3상을 올해 3분기 안에 완료해 연내 품목허가 신청을 목표로 두고 있다. 상업화 예상 시점은 2026년 하반기다. HK이노엔이 중국 사이윈드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도입한 비만 신약 ‘에크노글루타이드’도 현재 국내 임상 3상 단계로, 2028년 5월 임상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치료 선택지가 많을수록 환자들에겐 이득이다. 마운자로의 출고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후발주자인 만큼 위고비보다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위고비 한 달분의 출고가는 약 37만원이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최근 미국 의회는 비만 치료를 위한 법안을 상원 재무위원회에 회부하며 비만 치료 확대와 건강보험 적용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약물 치료에 대한 구체적 지원 내용은 담기지 않았으나 우리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만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비만기본법)을 발의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비만 치료 시장이 본격적인 다변화 국면에 진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환자들의 치료 선택지를 넓히는 긍정적 신호”라며 “제품 간의 경쟁을 넘어 향후 비만 치료제의 보험 급여, 처방 패턴, 유통 인프라 등 전반적 구조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