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사생활의 선을 넘다 [WORK & PEOPLE]

정의, 사생활의 선을 넘다 [WORK & PEOPLE]

기사승인 2025-08-13 13:00:03
김희영 노무법인 친구 공인노무사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이지안은 자신을 향해 비꼬는 말을 퍼붓는 이 대리를 향해 반격을 가한다. “둘이서 회삿돈으로 연애질하니까 좋지?” 이지안이 뒤이어 이 대리의 불륜을 회사에 공개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이 대리는 얼어붙는다. 유부녀인 이 대리는 회사 내 다른 유부남인 박 과장과 불륜 관계였고 회사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하며 내밀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이지안은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에 대한 증거를 모은 상태였다. 사내 관계의 역학과 권력의 불균형이 단 한마디로 전복되는 극적인 순간. 그간 수많은 무시와 천대를 당하여온 주인공이 더는 참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한 말이기에 시청자들에게는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통쾌한 순간 뒤에는 복잡한 윤리적, 법적 문제가 숨어 있다. 직원이 업무 시간에 조직 내 자원과 회사 공금을 개인적이거나 부적절한 목적으로 사용하였다면 이는 명백히 징계 사유가 될 것이다. 회사 법인카드의 사적 유용은 횡령에 해당할 수 있으며, 업무시간 중의 사적 행위는 근무 태만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지안의 발언은 부정행위를 고발하는 정당한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직원의 불륜을 회사에 공표하는 것은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누군가의 사생활이 도덕적 잣대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하여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에 관한 정보를 공개적으로 발언해도 되는 것일까? 갈등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정의 구현과 사생활 보호, 무엇이 우선인가?

실제 직장에서 다른 동료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을 낸 직원이 해고당했고, 그 해고가 부당하다며 구제 신청을 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이에 대법원은 ‘직장에서 동료의 불륜을 소문내고 모욕을 주었다면 해고가 정당하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6두56042 판결) 여기에서 불륜이 사실이었냐 아니었느냐는 판단의 핵심이 아니었다. 대법원은 ‘직원 간 상호 존중 가치에 반하고 일상적인 지도 또는 조언 수준을 넘어섰다’라고 판시하였는데, 이는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지켜야 하는 선을 그은 셈이다. 직장 내에서 동료 간의 관계가 단순히 개인적 감정이나 도덕적 판단으로 좌우되어서는 안 되고, 조직의 화합과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서로의 사생활에 개입하거나 이를 업무상 갈등 해결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는 늘 힘이 있다. 불의를 바로잡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그러나 모든 장소에서 모든 정의가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불륜이 사회적으로 죄악시되는 도덕적 문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만나는 동료 관계에서 타인의 사생활을 ‘정보’로 쥐고 상대방을 쥐락펴락하려는 순간 이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말의 내용보다 말의 타이밍과 맥락 그리고 그 말이 조직 내에서 미칠 파장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회사 내에서는 어떤 말을 내뱉는 순간 늘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지만 이 말을 이 순간에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글·김희영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친구 분당지사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 H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