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박정민의 두 ‘얼굴’ [쿠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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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 주연 박정민 인터뷰

기사승인 2025-09-15 16:46:28 업데이트 2025-09-15 17:02:39
배우 박정민.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정민은 바쁘다. 배우 박정민은 3주간 촬영한 영화 ‘얼굴’에서 1인 2역을 소화하느라 분주했고, 출판사 대표 박정민은 “작은 목소리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마저도 ‘대충 열심히’가 아닌, ‘진짜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15일 오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열심히 한 거지만 찔리는 순간들이 있다. 거짓말하는 게 싫다”고 털어놨다.

‘얼굴’은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권해효)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백골 시신을 발견하고 그 죽음 뒤 진실을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얼굴’은 일찌감치 연상호 감독 신작이라는 점에서 한 번, 고작 2억을 들여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또 한 번 주목받았다. 동명 원작 그래픽노블 팬이었다는 박정민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작품에 참여했다. “얼마 주신다고 해서 들어보니 마음을 쓰는 게 더 예뻐 보이겠더라고요. 이왕 도와드리는 거 화끈하게 도와드리면 좋을 것 같았어요. 감독님이 언젠가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을 때 시켜달라고 했었는데, 약속을 기억하고 전화하신 것 같진 않아요. ‘얘는 해줄 것 같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박정민은 임영규 젊은 시절과 임동환 모두 연기했다. 1인 2역은 직접 제안했단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효과적일 것 같았어요. 책을 다시 봤는데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 역할을 아들이 하면 영화적으로 재밌지 않을까’라고 1차원적으로 판단했어요. 그리고 아들과 아버지의 젊은 시절 중 하나를 해야 한다면, 저는 후자였어요. 배우가 정해졌는지 여쭤봤는데, 감독님이 간파하시고 1인 2역도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고요. 전 ‘제 말씀이 그겁니다’ 한 거죠.”

역시나 걸출한 연기를 펼친 박정민은 공교롭게도 임동환처럼 시각장애인 아버지를 두고 있다. 작품과 배역을 택할 때는 이 사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준비 과정에서 아버지를 떠올렸다는 전언이다. “아들 역할을 할 때는 너무 익숙해서 내 모습이 나오는 느낌이었는데, 아버지 역할은 아버지한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준비하고 싶은데 정작 아버지는 볼 수가 없잖아요.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어쨌든 제가 (눈이) 보이는 사람이니 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버지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 정도는 된 것 같아요.”

‘얼굴’은 권해효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특히 후반부 임영규가 임동환에게 정영희의 죽음에 대해 털어놓는 장면에서 그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박정민은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모든 스태프와 감독님이 숨죽이고 선배님의 연기를 본 이유가 뭐였냐면, 없는 대사가 있었어요. 선배님이 임영규의 전사를 얘기하는데 그게 대본에 없었어요. 그 순간 모두 임영규의 과거를 다 알게 된 거예요. 제가 했던 연기에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독백이었어요. 놀라웠어요.”

배우 박정민.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처럼 ‘얼굴’은 독립영화급 제작비로 탄생한 영화지만, 퀄리티는 기대를 웃돌고도 남는다. 최정상급 출연진 및 제작진이 짧은 제작 기간 동안 모든 역량을 쏟아 만든 덕분이다. 그간 이들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새삼 파격적인 제작 방식이다. 이 방식이 성공을 거둔다면, 침체된 영화산업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기에 성패를 향한 관심이 크다.

이와 관련해 박정민은 배우 입장에 서서 의견을 밝혔다. “제작 환경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함부로 얘기할 순 없지만, 제작 방식을 변화시키면서 극장 환경에 맞춰 나가는 방법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방법을 어떻게 제시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얼굴’ 같은 경우는 그동안 연상호 감독님이 써온 마음들 덕분에 가능했던 거예요. 말이 안 되는 예산이에요. 잘되면 같이 행복해지자는 마음으로 만든 거죠.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쁜 시도는 아닌 것 같아요.”

연상호 감독처럼 박정민도 ‘시도’ 중인 것이 있다. 바로 출판사 무제 운영이다. 최근 ‘듣는 소설 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으로 내놓은 오디오북 ‘첫, 여름 완주’를 베스트셀러에 올려놓는 등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배우가 아닌 대표로서 홍보 활동에 열을 올렸던 그는 “제 발로 뛰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더라”며 “작가님들의 결과물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뒷방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고 돌아봤다.

정통 출판인이 아닌 배우로서 출판업계에 쉽게 진입했다고 보는 시선에는 “‘유명하니까 책이 저렇게 잘 되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당연히 많을 것”이라면서도 “적어도 기존 출판사가 하던 것을 뒤집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정민이니까 이거 해줘’ 같은 방식은 전혀 취하지 않아요. 다른 출판사처럼 정확하게 일해요. 그런 부분에서 ‘쟤는 그래도 편법 안 쓰고 제대로 하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고요. 물론 이상한 도전도 하죠. 배우들을 데려다 오디오북을 만든다거나. 그런데 오디오북 시장이 작아서 많이 못 벌었어요. 다들 책의 진정성에 힘을 모아준 거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익을 취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려 했어요. 국지적으로 토라진 분들도 계시겠지만 예쁘게 보실 수 있도록 저희가 열심히 해야죠.”

궁극적으로는 ‘착한 회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모든 출판사가 그렇겠지만 세상에 나와야만 하고, 이야기할 만한 주제고,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려고 해요. 그렇게 조금 더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착한 회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인지도가 있는 누군가가 만든 출판사잖아요. 스피커나 남들보다 크고요. 그렇다면 조금 더 작은 목소리의 스피커가 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닌가 생각해요.”

박정민은 앞서 1년만 촬영장을 떠나고 싶다고 해 ‘안식년’을 갖는다는 말까지 돌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더욱 ‘열일’ 중이다. “‘박정민이라는 개인한테 과연 이게 좋은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스케줄에 치이다 보면, 사람이 매일 열심히 할 수 없잖아요. 자고 싶고 놀고 싶고, 그러다 보면 놓치는 신들이 생기더라고요. 동어반복 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지금은 본업 할 때가 제일 좋습니다(웃음).”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