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이 석유화학 사업재편 지원을 위한 자율 협약을 체결했다. 석화업계가 지원을 요청하면 주채권은행이 자구노력과 계획 평가 후 만기연장, 이자유예, 이자율 조정, 추가 담보취득 제한, 신규자금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석유화학 업계에 과잉 생산 감축을 위한 자구안부터 조속히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은행연합회는 30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석유화학 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 금융기관 등과 ‘산업 구조혁신 지원 금융권 협약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협약식엔 17개 은행과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무역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정책금융기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식은 지난달 석유화학 사업재편 지원을 위한 금융권 간담회 이후 협의를 거쳐 마련됐다. ‘산업 구조혁신 지원을 위한 채권금융기관 자율협의회 운영협약’을 체결하고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사업재편 지원을 약속하기 위한 자리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현재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공급과잉과 근본적 경쟁력 약화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이번 협약은 정상 기업에 대한 선제적 금융지원을 통해 기업의 자구노력을 돕고 부실을 방지함으로써 금융권과 산업계가 ‘윈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협약은 선제적 사업재편의 틀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석유화학 산업이 그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사업 재편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은 난이도가 높은 작업인 만큼 주채권은행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기업의 자구노력과 계획을 엄밀히 평가하고, 타당한 재편 계획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해 달라”고 했다.
협약에 따라 기업이 주채권은행에 구조혁신 지원을 신청하면, 주채권은행은 해당 기업에 채권을 보유한 채권은행을 대상으로 자율협의회를 소집, 공동실사를 거쳐 사업재편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자율협의회 운영 기준은 채권액 기준 ‘4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후 승인 절차를 거쳐 금융지원이 집행된다. △만기연장 △이자유예 △이자율 조정 △추가담보 취득 제한 등이 지원항목에 포함된다. 필요 시 신규자금도 투입 가능하다.

지원 대상 기업은 원칙적으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연체·부도 등 위기 기업 사업재편을 위해 세제·금융 등 정책지원 근거법)에서 승인받은 기업이다. 단 채권단이 동의하면 기활법에서 승인받지 않은 구조혁신 추진 기업도 포함된다.
앞서 은행권은 보다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위해 협약에 따라 만기 연장, 금리 조정 등이 이루어지는 채권에 대해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고 금융당국에 건의해왔다.
금융당국은 이번 협약에 따른 금융지원이 △정상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기업·대주주의 철저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하며 △수익성 개선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만큼,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라 자산건전성 분류를 상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감독 규정에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화되는 여신은 정상 또는 요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충당금 적립 부담이 줄어들어 석유화학 사업재편에 대한 금융지원 여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권 부위원장은 석유화학 업계의 사업재편 이행 노력을 당부했다. 업계가 제시한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 아직 미진한 탓이다. 그는 “이번 협약 제정으로 금융권은 선제적 사업재편의 틀을 마련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이어 “다만 아직 산업계가 제시한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산단별, 기업별 구체적 감축계획과 자구노력의 그림이 보이질 않는다”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사업재편 그림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