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잇단 부동산 논란…‘부동산 백지신탁제’ 재점화

고위공직자 잇단 부동산 논란…‘부동산 백지신탁제’ 재점화

기사승인 2025-10-31 06:00:07 업데이트 2025-10-31 08:38:11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논란이 이어지면서 일각에서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이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 등으로 제도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보유 실태 지적과 함께 백지신탁제 도입 요구가 이어졌다.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 차원에서 백지신탁제 입법을 추진할 의향이 있느냐”고 질의했고, 이에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고위공직자가 주거용 1주택 등 필수 부동산을 제외하고 다른 부동산을 신탁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주식에 대해서는 백지신탁제가 시행 중이지만, 부동산은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로 도입이 무산됐다. 이후 고위공직자의 과도한 부동산 사유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고위 공직자가 공직에 있는 동안 부동산 매매를 금지하거나 거래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번 ‘부동산 백지신탁제’ 논의는 이른바 ‘부동산 4인방’으로 불리는 고위공직자들의 논란에서 비롯됐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구윤철 경제부총리,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이 논란의 주인공이다. 이 원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1주택자이지만, 고가 부동산 보유와 갭투자 의혹 논란이 일면서 정책 신뢰 하락과 함께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이들의 부동산 처분까지 요구했다.

먼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의 같은 단지 내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어 논란이 됐다. 그는 1채를 실거래가보다 4억원 높은 22억원에 매물로 내놨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18억원에 재등록했고, 해당 아파트는 반나절 만에 거래가 성사됐다. 이 원장은 매도 대금을 국내 주식형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로 논란이 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13년 재건축을 앞두고 있던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아파트를 전세 끼고 8억5000만원에 매입한 뒤 거주하지 않았다. 2020년 조합원 자격으로 38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았으며 현재 시세는 40억원대 수준이다. 이 사실이 논란이 되자 이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평생 1가구 1주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해명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2018년까지 주택 4채를 보유한 다주택자였으나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자 다주택 처분 권고에 따라 3채를 매각했다. 현재는 배우자 명의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1채를 소유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13년 약 8억9100만원에 경매로 낙찰 받았으며 재건축 이후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가 됐다. 해당 아파트 전용면적 84.82㎡는 최근 35억원에 거래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서울 서초구 서초래미안 아파트 전용면적 146㎡를 보유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00년 김 정책실장이 해외 근무 직전 현재는 금지된 재건축 입주권을 사들여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세는 30억원 안팎이다.

이들 외에도 갭투자 의혹으로 사태가 확산된 이상경 전 국토부 1차관은 결국 사퇴로 이어졌다. 이 전 차관은 지난해 7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 전용면적 117㎡을 33억5000만원에 매수한 뒤 3개월 만에 14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국토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2분짜리 사과 영상을 공개했지만, 짧은 해명으로 여론을 수습하지 못했다.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논란이 이어지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을 공식 촉구했다. 경실련은 지난 27일 성명을 통해 “고위공직자의 과도한 부동산 보유는 정책 신뢰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키우고 불필요한 ‘내로남불’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제도화하고 서민 주거 중심의 구조개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서민 주거를 중심에 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재건축·재개발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해 공공주택 공급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우리나라는 사유재산권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도입 취지는 공감하지만, 실현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갭투자 의혹 등 논란이 있더라도 강제로 매각을 요구하기는 어렵고 권고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유림 기자
reason@kukinews.com
이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