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4구역, 고층 빌딩 건축 허용…종묘 가치 훼손 우려

세운4구역, 고층 빌딩 건축 허용…종묘 가치 훼손 우려

기사승인 2025-11-05 06:00:07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재개발 공사현장.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宗廟) 인근 세운4구역에 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다만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가치가 훼손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세운4구역 재개발 후 건물 최고 높이는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에서 각각 종로변 98.7m, 청계천변 141.9m로 상향됐다. 이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인 종묘의 가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세운4구역은 종묘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건물을 높게 지을 경우 경관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11월 시행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에 따라 고층 건물을 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묘가 유네스코에 등재될 당시에도 “세계유산구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할 것”을 명시한 바 있다. 반면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종묘로부터 약 180m 떨어져 있어 서울시 기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100m) 밖에 위치한다는 점을 들어 ‘세계유산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세운4구역은 지난 20년간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 방향이 달라지며 큰 혼란을 겪어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주변 상관을 활성화하기 위해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난 2004년 1월, 약 1만평(3만224㎡) 규모의 세운4구역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서울시는 인근 녹지광장 조성 비용을 세운4구역 토지·건물주들에게 부담시키는 대신, 개발이익을 보장해 주기로 하고 건축물 높이 제한을 기존 90m에서 104m로 완화했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 시장은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남산에서 종묘로 이어지는 1km 길이의 녹지축을 복원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사업 시행자는 SH(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제동이 걸렸다. 계획대로 추진할 경우 종묘의 경관이 훼손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건축물 높이를 99m로 낮추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세운상가를 철거하지 않고 존치하기로 했다. 대신 세운상가 주변 지역은 대규모 전면 재개발 대신 171개로 쪼개 중·소규모로 나누어 개발하되, 세운4구역만은 예외적으로 단일 개발을 허용하는 방침을 내놨다. 2014년까지 5년간 이어진 문화재청 심의 끝에 세운4구역의 최고 건물 높이는 72m로 조정됐으며 2018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이후 문화재발굴조사에 들어갔고 문화재가 발굴되면서 재개발은 늦춰졌다.

세운4구역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사이, 다른 구역들은 이미 재개발을 마쳤다. 세운6-3구역에는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 주상복합과 을지트윈타워가 들어섰다. 세운3구역에는 힐스테이트 세운센트럴 1·2단지가 조성됐다. 한편 세운2구역은 지난 7월 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전문가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가까이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운4구역은 문화재 보호와 사업성을 위해 건물을 높게 짓자는 요구가 충돌하는 곳”이라며 “종묘와 세운4구역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근처에 건물을 지으려면 고도제한을 받는다”며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만나 사회적 합의를 잘 이끌어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유림 기자
reason@kukinews.com
이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