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항인데, 그것도 국내선인데 왜 한글이 없죠?”
김포공항 국내선 수속층에서 한 어르신이 항공사 카운터를 찾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공항 천장에 항공사 로고가 줄지어 걸려 있지만, 한글 안내는 어디에도 없었다. 김포공항 이용객의 83%가 국내선 승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들에게 공항 안내판은 무용지물과 다름없다.
기자가 길을 잃은 어르신을 모시고 수속 카운터로 이동했지만, 셀프체크인 기기 앞에서도 상황은 같았다. 기기 화면 속 항공사 목록도 모두 영어였다. ‘교통약자 전용’이라고 적힌 기기마저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불편을 넘어, 영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을 배제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장면은 취재의 출발점이 됐다.
이날 취재를 통해 <“뭣이 진에어여”…‘국내선 83%’ 김포공항의 한글 잃은 이상한 표기법>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공항 안내판과 셀프체크인 기기, FIDS(출·도착 안내 전광판) 등에 한글 표기가 없어 고령층, 교통약자 등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내용을 다뤘다.
보도 직후, 한국공항공사는 항공사와 협의해 한글 병기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조치는 빠르게 진행됐다. 이틀 뒤에는 김포공항뿐 아니라 전국 지방공항으로 한글 병기가 확대됐다. 개선 필요성을 인지하고 반영한 것이다. 비로소 ‘안내’가 시작됐다.
공항의 한글 안내가 이용객을 배려한 조치라곤 할 수 없다. 이는 이미 법으로 명시된 원칙이기 때문이다. 국어기본법 시행령 제20조(공공시설 표기 등)에 따르면 공공시설 등의 표기는 한글을 기본으로 하고, 외국어는 필요할 때 병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글 표기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공공시설인 공항은 ‘누구나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전국 공항 어디에서도 그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공공 표기는 해당 공간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장치다. 안내 표기에 한글이 빠지면서 정보를 얻을 권리는 배제됐다. 한글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옵션이 아니다.
언어학자들도 표기 문제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없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글학회장인 김주원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공항 같은 공공시설 이용에 따른 불편을 살피고 보완해야 한다”면서 “어느 누구도 못 읽거나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표기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한글 표기가 반영된 공항 안내 화면을 마주했을 때, 공항 복판에서 발걸음을 멈췄던 그 어르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공항은 세계로 향하는 통로다. 하지만 그간 누군가는 출발부터 가로막힌 답답함을 가졌을 것이다. 공항의 언어는 ‘글을 읽는 사람’보단 ‘길을 잃은 사람’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