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빚투’…코스피 분위기 좋지만 조정 오면

불 붙은 ‘빚투’…코스피 분위기 좋지만 조정 오면

기사승인 2025-11-12 11:00:10
5대 시중은행. 쿠키뉴스 자료사진

#직장인 권모씨(31)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연 6.8% 금리의 비상금대출을 받아 단기 투자에 나섰다. 한 달간 6% 이상의 수익을 내면 이자 부담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스피 ‘불장’에 이자율을 상쇄하는 수익을 내자, 지난주 코스피 조정 국면에서 추가 대출까지 받았다. 

코스피가 지난주 변동성을 키우며 단기 조정에 들어섰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는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다. ‘빚투’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7일 기준 가계신용대출 잔액은 105조9137억원으로 집계됐다. 10월 말(104조7330억원)과 비교해 1조1807억원 늘며, 일주일 만에 10월 한 달 증가 폭(9251억원)을 넘어섰다.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레버리지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코스피가 미국발 AI(인공지능) 거품론 등에 휘청이는 속에서도 개인투자자는 빚투를 이어갔다. 코스피가 2.8% 넘게 급락하며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한 지난 5일에도 하루 새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6238억원이나 급증했다. 지수가 빠지자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표적 빚투 지표인 국내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최대치를 경신했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개인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규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6조2165억원으로 사흘 연속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전문가는 코로나19 시기와 근본적인 투자 심리는 비슷한 것으로 진단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 시기 빚투는 주가 상승 흐름 속에서 수익을 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지금처럼 주가 상승이 뚜렷하게 관찰될 때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익을 내겠다는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변동성이 큰 주식 특성상 빚투 확산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앞서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빚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은 “주식시장은 외부 변수에 매우 취약하다”며 “유동성 위기나 경기 침체 시 빚으로 투자한 청년과 서민은 삶의 기반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용거래의 경우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강제청산)가 급증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빚으로 산 주식이 하락해 담보 가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는 담보 주식을 강제로 팔아 돈을 회수하는 반대매매에 나선다. 이 경우 투자자가 원치 않은 시점에 주식을 헐값에 청산당할 수 있다.  

이보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유가증권시장 신용융자 증가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신용융자가 자본재와 반도체에 집중돼 있어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에 따른 해당 업종 가격 하락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며 “두 업종의 코스피 시가총액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코스피가 1.8% 하락한 지난 7일 나온 반대매매 금액만 380억원으로 올해 최대치를 기록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총액이 지속적으로 늘고 금리 압박이 커지면 파산하는 가정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규제 차원에서 금리를 올리는 순간, 과도하게 빚을 낸 개인투자자들의 파산 위험이 더 높아질 수 있다”며 “빚투 현상은 구조적 문제로, ‘막차를 타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는 포모(FOMO·놓칠까 두려움) 심리가 깔려 있다”고 봤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AI·반도체 주식이 급등하며 거품을 키운 것이 아닐까 염려된다”면서 “만약 거품이라면, 빚으로 인해 가계에서는 소비가, 기업 차원에서는 투자가 위축돼 경기 회복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태은 기자
taeeun@kukinews.com
김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