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시장의 성장 정체와 규제 부담이 겹치면서 외국계 보험사들의 철수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남은 외국계 보험사들은 보장성 상품 중심 전략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며 한국 시장 잔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현지화된 상품 개발과 디지털 혁신을 통해 고객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규제 대응력과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생명보험사는 라이나생명, 메트라이프생명, BNP파리바카디프생명, 처브라이프생명, 푸본현대생명, AIA생명 등 6곳에 불과하다. 손해보험사 가운데 국내에 별도 법인을 두고 사업 중인 곳은 악사손보, AIG손해보험, 라이나손보에 그친다.
이는 지난 10여 년간 외국계 보험사들의 철수가 이어진 결과다. 2013년 ING생명을 시작으로 우리아비바생명(2014년), 알리안츠생명·PCA생명(2016년), 푸르덴셜생명(2020년) 등이 차례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2022년에는 미국 시그나그룹이 라이나생명을 스위스 처브그룹에 매각하며 발을 뺐다. 최근에는 BNP파리바카디프생명과 악사손보도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어, 외국계 보험사의 이탈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계는 이러한 흐름의 배경으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시장 성장성 둔화와 금융당국의 복잡한 규제,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꼽는다. 한 외국계 보험사 관계자는 “한국 시장은 규제가 과도하고 관치적 성격이 강해 본사에서도 한국의 제도적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며 “IFRS17이 자율성을 전제로 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세세한 규제가 많아 불만이 있다”고 토로했다.
실적 부진도 외국계 보험사들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외국계 생명보험사 6곳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27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8% 감소했다. 같은 기간 보험손익과 투자손익도 각각 19.7%, 40.2% 줄었다. 환율 변동, 투자환경 악화, IFRS17 도입에 따른 계약서비스마진(CSM) 상각 축소 등 복합적 요인이 겹친 여파다.
남은 곳은 영업 효율화·GA 강화로 돌파구 모색
남은 외국계 보험사들은 잇따른 철수 흐름 속에서도 한국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기 위해 조직 재편과 판매 전략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CSM 확보에 유리한 보장성 상품 비중을 늘려 수익 구조를 안정화하고, 전속·GA 채널을 병행하는 영업 다변화로 시장 대응력을 높이려는 구상이다.
푸본현대생명은 전속 채널 확대와 GA 채널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영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연말 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상반기에는 건강보험 ‘마이픽’ 특약을 확대하는 등 상품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AIA생명은 2023년 자회사형 GA ‘AIA프리미어파트너스’를 출범시킨 이후 여러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해 설계사 조직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최근에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내년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라이나생명은 지난 7월 관계사 GA인 라이나원을 자회사로 편입해 약 120억원 규모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라이나원은 텔레마케팅(TM) 전문 GA로, 보험 영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메트라이프생명은 고객의 건강관리부터 은퇴 설계까지 아우르는 통합 헬스케어 서비스 ‘360헬스’와 ‘360퓨처’를 앞세워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 전속 설계사 조직과 자회사형 GA를 병행 운영하며, GA 부문의 흑자 전환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 관계자는 “메트라이프금융서비스가 지난 1년간 빠른 조직 성장과 실적 개선을 이어온 결과,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손익분기점(BEP)을 넘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현금 보유액 증가와 함께 손익이 플러스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경쟁력 있는 외국계 보험사에게는 오히려 시장 점유율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지화된 상품 개발과 디지털 혁신을 강화한다면 여전히 성장 여력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 외국계 보험사들은 과거 한국 보험시장의 혁신을 이끌었다. 업계 최초로 대졸 남성 설계사 조직을 도입했고, TM(텔레마케팅) 채널로 저가형 보험상품을 성공적으로 판매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또 고령층 맞춤형 상품과 국내 최초 치아보험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이경재 전주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지화된 상품 개발과 디지털 혁신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내 기업과 인슈어테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고객 접점을 확대하고, 규제 대응력과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