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상향안을 사실상 확정하면서 자동차 산업 전반에 가격 상승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번 감축 상향은 국제 평균 수준(60%대)과 헌법재판소 판결 취지(기후위기 대응 강화)를 반영한 결과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이미 전기차 판매 둔화, 수출 감소, 중국산 저가 공세 등 여러 변수에 직면해 있어 감축 속도가 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생산공정부터 막힌다… 고전력 구조의 한계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기까지 도장·용접·프레스·주조·배터리 셀 생산 등 고전력 공정이 복합적으로 이어진다. ‘고전력 공정’이 많다는 것은 곧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도장 공정은 대표적인 ‘전력 블랙홀’이다. 현대자동차는 2023년 “도장 공정이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약 43%를 차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생산공정 자체의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만큼, 감축 목표가 상향되면 공정 효율 개선, 고효율 설비 도입, 공장 개보수 등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공정 구조 때문에 감축 목표가 상향되면 제조원가 상승 압력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배출권 비용 상승도 업계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배출권거래제(ETS)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 가격은 2021년 초 톤당 약 2만 원 수준이었으나, 2025년 10월 말 기준 4만 원대를 넘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여기에 유상할당 비중 확대까지 검토되면서 기업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 등 완성차업계는 도장 공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고효율 설비 교체, 배터리 공장 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RE100)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모두 수천억원 이상의 투자비가 들어가는 사업들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감축 목표가 올라가면 공장 한 곳이 감당해야 하는 전력 절감량이 커지고, 그만큼 설비투자 압박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결국 비용의 일부는 차량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환경도 국내 산업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유럽은 감축 목표를 꾸준히 높이며 제조업 전반에 탈탄소화를 요구하고 있고,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전기차·배터리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이 같은 외부 압박 속에서 국내 완성차 업체는 전기동력 전환, 공장 전력 재생에너지 전환, 배출권 비용 대응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삼중 과제’에 놓여 있다. 여기에 전력요금 상승, 전기차 판매 성장 둔화, 글로벌 경기 약세까지 겹치면서 감축 투자 여력은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상향을 통해 산업·수송 부문 전반에 구조적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상향안은 국제 평균 감축 수준(60%대)과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기후 대응 강화)를 반영해 설정된 범위다. 하지만 업계는 “목표 자체보다 중요한 건 속도와 이행 방식”이라며, 산업 구조·공정 특성·기술 수준을 고려한 후속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감축 목표 필요하지만… 문제는 실행 방식
전문가들은 감축 목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산업 현실에 맞는 단계적 이행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자동차 공장은 도장 공정부터 배터리 셀 생산까지 고전력 공정이 많아 감축 설비를 도입할수록 비용이 대폭 증가한다”며 “RE100 전환, 설비 개보수, 배출권 구매 등 모든 비용이 누적되면 차량 가격 상승은 불가피한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 규제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재 제시된 목표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산업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자동차연구원 이항구 연구위원은 감축 목표의 배경과 구조적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자동차는 생산 과정보다 주행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비중이 훨씬 크다”며 “내연기관차가 줄지 않는다면 생산공정 감축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53~61% 감축 레인지는 국제 평균과 헌재 취지를 반영해 설정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 전문가는 공통적으로 정부의 후속 지원책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김 교수는 “감축 목표만 일방적으로 높이면 제조·부품·중소업체 전반에 충격이 커진다”며 “전력 인프라 개선, 세제지원, 배출권제도 보완 등 현실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 역시 “탄소중립은 산업 경쟁력의 문제와 직결된다”며 “감축 과정에서 중소 부품사·인력·R&D 지원이 뒤따라야 산업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자동차 산업은 ‘탈탄소’와 ‘가격 안정’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감축 목표 자체는 국제적 요구이자 불가피한 방향이지만, 생산공정 투자 부담이 커질수록 차량 가격은 오르고, 산업 경쟁력은 약화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