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 의무는 먼저, 기준은 여전히 공백…AI기본법 앞두고 산업계 불안 커진다

고지 의무는 먼저, 기준은 여전히 공백…AI기본법 앞두고 산업계 불안 커진다

AI기본법 시행령 입법예고…'고영향 AI' 판단 기준 여전히 모호
준비 기간 4개월 남짓…다중 규제 리스크에 업계 "예측 불가능"

기사승인 2025-11-30 06:00:05 업데이트 2025-11-30 07:45:10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의 시행령이 입법예고됐지만, 정작 산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구체적 기준’은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내년 1월 시행되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의 시행령이 입법예고됐지만, 정작 산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구체적 기준’은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규제보다 진흥 중심이라고 강조하지만, 현장에서는 “기준은 없고 의무만 생겼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2일 AI기본법 시행령 초안을 입법예고하고 12월22일까지 의견을 받는다.

시행령에는 생성형 AI 사용 시 고지 의무 등 일부 규제 내용만 담겼을 뿐, 규제 핵심인 ‘고영향 AI’ 판단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내년 1월22일 전면 시행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2개월. 여기에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각 부처가 각자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다중 규제 리스크’가 더해지며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중복 규제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지적이다. 

"대비할 기준조차 없다"…AI업계 혼란

업계의가 가장 큰 우려는 ‘고영향 AI’ 정의의 모호함이다. 법은 고영향 AI를 ‘개인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AI’로 규정하고, 해당 사업자에게 영향평가 등 추가 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시행령 초안에는 이를 판단할 구체적 절차와 세부 기준이 빠져 있다. 고영향 AI 판단 기준도 ‘중대한 영향’, ‘위험 발생 우려’ 등 추상적 표현만 나열돼 기업들이 자체 판단할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우리 서비스가 고영향 AI에 해당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법을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사업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마경태 김앤장 변호사도 절차적 비효율성을 우려했다. 그는 “고영향 AI 여부는 기획 단계에서 판단해야 하는데, 확인 요청서에 담아야 하는 시스템 구성·학습 데이터 개요 등은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돼야만 알 수 있는 정보”라며 “개발 완료 후 고영향 AI로 판정되면 전체 과정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고영향 AI 확인 절차가 기본 30일, 최대 60일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했지만, 업계에선 ‘AI 개발 사이클에 비해 지나치게 길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대기업도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속한 정보기술산업협회(ITI)의 한국 지부는 최근 정부에 AI기본법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도 이 같은 입장을 공유받았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빅테크 기업들도 자사의 AI 서비스가 향후 고영향 AI로 지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동일한 규제 내에서 자사 서비스가 고영향 AI로 지정되면 엄격한 사전 고지 및 투명성 의무로 인해 서비스 출시 및 혁신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3사는 생성형 AI 서비스에서 AI 사용 사실을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고지 의무'가 기존 서비스 구조와 충돌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텍스트 기반 서비스에 ‘AI 생성 문구’를 일일이 표기하는 것은 기술적 제약과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의 어려움은 더 크다. 시행까지 남은 기간은 4개월뿐인데 컴플라이언스 인력·비용은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올해 보고서에서 “AI 규제 도입 시 중소 AI기업의 컴플라이언스 비용이 최대 40%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행령에 '개인정보' 단어조차 없어

시행령 초안의 공백은 이뿐만이 아니다. AI 규제의 핵심으로 꼽히는 개인정보 보호나 저작권 관련 내용은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시행령 초안에는 ‘개인정보’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별도로 진행 중이지만 두 제도 간 연계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별도로 추진 중이어서 시행령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업계는 “정작 필요한 가이드라인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이용자'와 '이용사업자' 구분도 모호하다. AI를 개발하는 사업자와 이를 활용하는 사업자 중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유진 김앤장 변호사는 ‘투명성(고지) 의무’의 모호함도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에서 기준이 되는 이용자가 누구인지 불명확하다”며 “텍스트 콘텐츠는 복사·편집이 쉬워 워터마크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예외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 업무용 AI 생성물은 고지 의무가 면제되지만, 계열사나 외주 업체와 공유되는 경우가 ‘내부’에 포함되는지 불분명해 실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0월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AI 프론티어 국제 심포지엄 2025’ 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부처별 ‘개인플레이’…규제 충돌 우려

현장의 불만은 “누가 무엇을 규율하는지조차 불명확하다”는 데 있다. 현재 여러 부처가 각자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외에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생성형 AI 콘텐츠 표시 의무를, 개인정보보호위는 AI 개인정보 처리 기준을, 문화체육관광부는 AI 저작권 가이드라인을 각각 준비 중이다.

금융위원회·식품의약품안전처·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일부 부처는 자사 소관 법률을 충족할 경우 AI기본법상 ‘고영향 AI 책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과기정통부와 조율을 마쳤다.

그러나 금융위·보건복지부 등 산업별 부처가 별도의 AI 규제나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고 있어 실제 현장에서는 워터마크 부착이나 영향평가 등에서 규제가 중복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 “진흥 중심·계도기간 운영”…업계는 회의적


정부는 AI 산업 육성을 위해 AI 연구개발(R&D), 집적단지 지정 등 진흥책도 함께 담았다. 또한 제도의 현장 안착을 위해 최소 1년 이상의 과태료 계도기간을 운영하고, 통합안내지원센터(가칭)를 통해 기업 문의에 대응할 방침이다.

정부는 고시·가이드라인을 통해 ‘모범 사례’를 제시해 기업 부담을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 측은 “AI기본법은 규제보다 진흥에 중점을 둔 법"이라며 "시행 후 최소 1년 이상 계도기간을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업계는 회의적이다. 계도기간이라도 조사·자료 제출 요구는 언제든 가능해 규제 대응 비용은 여전히 발생한다는 이유다. 특히 영향평가 수행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예산·지원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도 제도 설계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AI기본법이 유럽연합(EU) AI법의 ‘위험 기반 접근’을 거의 그대로 수용해 잠재적 피해만 강조되고 있다”며 “기술의 경제·사회적 이익까지 함께 평가해야 규제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고영향 AI의 정의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기업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명확한 기준 없이 사전 고지 의무만 먼저 적용되면 기술 개발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는 “EU도 AI법과 관련한 일부 조항의 유예를 검토하고 있는데, 한국만 무리하게 앞서가는 것 아니냐”며 “글로벌 기준과의 정합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에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입법예고 기간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AI 산업 발전과 안전·신뢰 기반 조성이라는 입법 취지를 잘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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