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가 새만금이라는 입지적 강점을 앞세워 사활을 걸고 매진했던 ‘핵융합 핵심기술 개발 및 첨단 인프라 구축사업(인공태양 핵융합 연구시설)’ 유치에 실패하면서 지역 여론이 들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10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1조 2000억원 규모의 ‘핵융합 핵심기술 개발 및 첨단 연구시설 부지’ 공모를 실시해 우선 대상지로 전남 나주시를 선정했는데, 전북자치도가 절차적 공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해 지역사회에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인공태양’이라고 불리는 핵융합은 탄소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배출하지 않고, 폭발 위험도 없어 안전한 ‘꿈의 에너지’로 불리고 있다. 특히 지구 온난화를 대처하기 위한 탄소 중립과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하는 AI시대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을 상용화하는 초석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전북자치도는 지난 1일 “부당한 결정으로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에 ‘핵융합 핵심기술 개발 및 첨단 인프라 구축사업’ 부지 선정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공식 제출하고 이와 별도로 법적 대응도 검토 중에 있다.
전북자치도가 이의신청에서 제기한 쟁점은 크게 3가지로, 먼저 공고문에 명시된 ‘토지소유권 이전이 가능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는 기본방향과 관련해 나주가 우선협상 지역으로 선정된 것은 평가 기준 적용의 심각한 ‘하자’라고 지적했다.
전북자치도는 출연금을 통한 소유권 이전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나, 전남도는 특별법 제정 등 지자체 권한을 넘어서는 계획을 제안했고 전남이 제안한 부지는 산단으로 지정되지 않은 개별입지가 86%에 달하며 농업진흥지역·준보전산지 등이 40%를 차지해 실질적인 개발 가능성에도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전북자치도는 평가 절차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했다. 앞서 유사한 공모였던 2020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은 부지선정 발표 평가 후 평가위원단이 1, 2순위 지역에 대해 직접 현장실사를 진행했으나, 이번에는 평가위원 없이 실무진만이 현장 조사에 참여했고 부지의 객관적인 조건이 발표 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의 공모 및 심사 기간이 고작 1개월에 불과한 것도 문제다. 평가위원장이 현장실사에 직접 오지 않았고, 평가 15분 전에 질의서 배포했으나 질의서의 질문 구조가 단답형으로 구성돼 형식적 절차를 확인하는 문서 같은 느낌이었으며 평가결과·평가표·감점 근거도 비공개로 진행됐다.
전북자치도는 지난 2009년 핵융합연구원과 협약을 맺고 2012년 플라즈마기술연구소를 개소해 1단계 사업으로 핵융합 관련 핵심기술 연구 기반을 갖추고 있어 2단계 사업격인 핵융합 첨단 연구시설 대상으로 적합하고, 이번에도 공고문 기본방향을 충실히 반영해 사업부지를 제안하고 2027년 바로 사업 착공이 가능한 방법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전북자치도 국회의원들도 김관영 도지사와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인공태양 사업 부지 선정과 관련해 “공모사업의 형식을 취한 사전 내정”이라는 의심을 숨길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특정 지역이 수혜를 본 사업 공모 결과에 대해 광역단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이 철회를 촉구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윤준병 전북도당위원장과 이성윤·박희승 의원은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국회로 불러 ‘인공태양(핵융합) 기술개발 사업’부지 선정 과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윤 의원은 ‘부지 기본요건은 절대 요건’이라며 기본요건이 안 되면 대상에서 제외라고 공고문에 적혀 있는데도 이 사항이 무시됐다고 항의했고, 이 의원은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특별법을 가정해서 부지를 선정한다는 게 이치에 맞는지 한번 살펴보라”고 질타했다. 박 의원도 “새만금은 현행법 안에서 해법을 찾았고, 지금 선정된 부지는 특별법 제정이라는 가상 조건이 붙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남도도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전남도와 나주시는 한국에너지공대 등 지역 연구·산업 인프라와 협업해 유치 역량을 내세우며 주민 수용성, 산학연 집적 환경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주력했고, 궁극의 에너지원인 ‘인공태양’ 에너지 시설을 유치하면 명실상부한 ‘에너지 수도’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료들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전남도의회도 도민 결속과 퍼포먼스 등을 통해 지역 정서를 결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만금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앞세웠지만 다른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들도 있을 수 있다. 전북자치도가 선정 결과를 놓고 ‘절차상 하자’임을 들며 ‘법리적 다툼’을 예고하고 지역 정치권, 도민들이 모두 반발하고 있지만 결과가 전격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법적 대응과 함께 논리적 대응은 대응대로 하고, 탈락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냉정한 분석해 다른 사업의 공모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