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연료-원전 EPC-SMR 상용화, 한미 원자력 협력의 3축…실질 파트너십 필요”

“핵연료-원전 EPC-SMR 상용화, 한미 원자력 협력의 3축…실질 파트너십 필요”

기사승인 2025-12-09 09:34:05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쓰리마일섬(Three Mile Island) 원자력 발전소 전경. 미국 에너지부 

글로벌 주요국이 전력 확보 경쟁에 나선 가운데, 핵연료, 원전 EPC(설계·조달·시공),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중심으로 한미 원자력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종현학술원은 9일, 한국이 직면한 전략적 선택지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한미 원자력 협력 추진 전략’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 11월 최종현학술원이 ‘한미 원자력 동맹의 심화와 산업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열었던 회의 논의를 기반으로 구성됐다. 해당 회의에는 원전, SMR, 핵연료주기, 핵추진 잠수함 등 원자력 전 분야의 주요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미 원자력 협력의 실질적 방향을 집중 논의했다. 

먼저, 보고서는 미국이 300GW(기가와트)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을 선언한 배경으로 AI 시대의 최대 병목인 전력 공급 문제를 지목했다. 미국의 이번 결정은 사실상 전력 인프라 전면 재편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미중 간 전력설비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전기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발전·송전·배전 등 전력 장치 산업 전반이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한국의 원전 EPC 역량이 이미 글로벌 표준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UAE 바라카 3·4호기와 새울 1·2호기만이 예산과 공정을 모두 지킨 유일한 프로젝트”라며 “혹독한 사막 환경에서도 성과를 낸 것은 APR1400의 설계·건설·운영 능력이 국제적으로 검증됐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한국이 원전 강국임에도 핵연료 주기와 원천 기술 부문에서는 구조적 취약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EPC·운영·사업관리 역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유한 반면, 미국은 차세대 SMR 설계·지식재산권(IP)·외교력·기술 원천성에서 우위를 가져 양국 역량이 “비대칭적이지만 상호보완적 구조”라고 진단했다. 

이어 손 교수는 “미국이 관심을 두는 핵심은 한국의 농축·재처리나 핵잠 기술 자체가 아니다”라며 “미국이 시급히 원하는 것은 원자력 발전 능력의 조속한 확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이 구조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현실적으로 가장 실현 가능한 협력 축은 대형 원전 건설 협력과 SMR 공동 전개”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한미 원자력 협력을 단순한 기술 교류 차원이 아닌 전략적 산업 생태계 구축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협력의 핵심 축을 △핵연료주기 △대형 원전 EPC 및 운영·유지보수(O&M) △SMR 상용화 등 세 분야로 구분하며, 이 영역에서 구조적 파트너십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순도 저농축우라늄(HALEU) 확보를 단기·중장기 국가전략의 최우선순위로 규정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HALEU 생산시설에 한국 기업이 직접 참여해 기술·산업 협력을 조기 확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한미 규제기관 간 상시 소통 채널을 구축해 규제 표준화와 승인 절차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용수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 교수는 한국의 민수용 우라늄 농축 수요량이 약 400만 SWU 수준으로 “경제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 32기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 수요량에 해당한다”며, 미국에 농축 허용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 수요를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한미 원자력 협정이 민수용(civilian purpose)에 한정된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 원칙을 군사적 이용과 섞어 논의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협정 구조상 한국이 농축·재처리 분야를 추진하려면 상업적 필요성을 명확히 제시해야 하고, 이후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판단하는 ‘공동 결정(joint determination)’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원자력 협력 추진 전략’ 보고서 표지 일부. 최종현학술원 제공 

韓 SMR 기술력, 게임체인저 가능…핵잠, 단계별 검증이 관건

김무환 SK이노베이션 에너지솔루션(Energy Solution) 사업단장은 “SMR 확장을 위한 한미 협력은 산업 경쟁력 강화와 탈탄소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무탄소 기저전원 대안이 사실상 원자력으로 수렴된다는 점을 들어 글로벌 빅테크와 AI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이미 여러 SMR 업체와 협력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4세대 SMR의 경우 부지 제약을 크게 낮출 수 있고 재생에너지와의 보완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사용후핵연료 발생량도 기존 경수로 기반 SMR 대비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 운용 효율이 동시에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SMR 경쟁력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형 원전 공급망, 한수원의 EPC·운영 실적, 그리고 국내 산업계의 실수요가 결합된 매우 유리한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심사 절차 간소화 움직임을 언급하며, “규제 협력이 선행돼야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역시 미국 규제 체계 변화에 발맞춰 대응하고, 민·관 협력 채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김 단장은 4세대 SMR 상용화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로 HALEU 공급망 불확실성을 꼽았다. 그는 “프로젝트 추진과 연료 확보가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진전이 어렵다. 이른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법으로 △미국 내 농축 설비 투자 참여 △한·미·일 간 규제 표준화 △다자 협력을 통한 안정적 연료 공급 체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을 둘러싼 논의에 대해 전문가들이 제시한 전략적 가능성과 단계별 검증 과제를 함께 정리했다.

먼저 핵잠이 한미 연합 억제력 내에서 실질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잠은 잠수함의 은밀성과 핵추진의 지속성을 결합한 전략 자산”이라며 “한국형 핵잠이 미 전략 자산의 공백을 보완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연합 수중전력의 ‘기동적 억제력’을 분담하는 구조로 설명해야 미국의 실질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행 측면에서도 현실적 가능성이 제기됐다. 함형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핵잠 논의의 쟁점은 이제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배치하고 어떤 규제 체계를 갖출 것인가로 이동했다”며 향후 과제로 △부지 선정 △지역사회 갈등 관리 △군 전용 원자로 안전 규제 마련 △사용후핵연료 처리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협정 준수 등을 제시했다. 

반면, 핵잠의 전략적 효과가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핵잠 개발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국방 예산의 현실과 우선순위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핵잠 사업이 총 20조원을 넘는 초대형 사업으로, 해군 전력 확충을 넘어 육·공군 전력 배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의 저수심·근해 환경에서는 재래식 잠수함이 탐지·추적 임무에서 여전히 장점이 있고, 한·미 연합체계 내에서 미국 핵추진 잠수함 전력이 이미 충분히 운용되고 있다”면서 전략적 필요성과 예산 배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욱 서강대 교수도 “현재 논의 대상은 억제·보복 전력으로 활용되는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이 아니라 공격 임무 중심의 핵추진 잠수함(SSN)”이라며 핵잠 역할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해군은 이미 디젤 추진 기반의 안창호급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대잠전의 실제 양상을 “잠수함 간 교전이 아니라 수상 전력, 항공 전력, 해저 음향감시체계(SOSUS)”라고 지적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