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으론 못 버틴다”…‘IP 파이프라인’ 확장이 게임사 기업가치 가른다 [쿠키 리뷰]

“한 방으론 못 버틴다”…‘IP 파이프라인’ 확장이 게임사 기업가치 가른다 [쿠키 리뷰]

펄어비스⋅엔씨⋅카카오, 단일 히트작 의존 심화
넥슨⋅넷마블⋅시프트업, 다각화로 밸류 방어 나서

기사승인 2025-12-12 06:00:10
넥슨 아크 레이더스 첫 대규모 업데이트 노스 라인 실시. 넥슨 제공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기업가치가 ‘IP(지식재산권) 확장 능력’과 ‘좋은 게임을 반복 생산하는 역량’에 따라 갈리고 있다. 검은사막·리니지·오딘 등 소수 흥행작에 의존하는 회사들은 신작 부재와 규제 리스크에 직면하면서 시장에서 구조적 디스카운트를 받지만, 다양한 IP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새로운 타이틀을 꾸준히 내는 넥슨·넷마블 등은 변동성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출발점인 ‘얼마나 좋은 게임을 만드느냐’와 다음 단계인 ‘좋은 게임을 하나의 IP 자산으로 얼마나 오래, 넓게 활용하느냐’에서 기업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시각이다. 단일 히트작에 기대는 구조는 단기 실적을 내는 데 유리할 수 있지만, 반복 가능한 IP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주가와 밸류에이션에서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펄어비스는 게임사업부문과 기타부문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다만 올해 3분기까지 게임사업부문이 전체 매출(2701억원) 중 97.3%인 2629억원을 마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직 게임에서만 실적을 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의존도가 심하다. 현재 이 회사는 ‘이브’와 ‘검은사막’ 두 게임에 의존하고 있다. ‘이브’가 오래된 IP로 최근 매출이 여의치 않았고, 올해 3분기 ‘검은사막’ 대규모 업데이트 효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068억원, 1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3% 상승하면서 흑자전환한 점을 보면 사실상 ‘검은사막’에 치중된 구조로 풀이된다.

이렇다 보니 펄어비스의 경우 ‘검은사막’ 단일 IP에 매출이 집중된 상황에서 몇 차례 발표를 미루며 다년간 개발해 온 ‘붉은사막’ 성과가 향후 기업가치를 좌우할 분수령으로 전망된다. ‘붉은사막’이 글로벌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추가 IP 라인업인 ‘도깨비’, ‘플랜8’ 등도 개발·마케팅 방향성이 흔들릴 수 있어 회사 신뢰도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씨소프트(NC)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매출·이익 상당 부분을 여전히 리니지 계열 게임들이 책임지는 가운데 규제 강화와 이용자 고령화, 경쟁 심화가 겹치면서 ‘포스트 리니지’에 대한 물음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엔씨는 지난해부터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개발 조직 재편과 비용 효율화에 나섰다.

긍정적인 부분은 ‘아이온2’ 등 신작을 통해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엔씨는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아이온2’ 발표 이후 수차례 라이브 방송을 통해 이용자 신뢰 회복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아이온2’ 일주일 추정 매출을 약 250억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첫 달 1000억원 돌파 가능성도 거론한다. ‘아이온2’가 단순한 단기 흥행에 그치지 않고 리니지에 버금가는 장기 IP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엔씨 밸류에이션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역시 배틀그라운드, 오딘 등 일부 흥행작과 퍼블리싱 타이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퍼블리싱 구조 특성상 핵심 IP에 대한 지배력이 제한적이고 자체 보유 IP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이 장기 밸류에이션의 발목을 잡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자체 IP ‘프로젝트 Q’, ‘아키에이지 크로니클’ 등이 출시될 예정인 만큼, 이들 신작의 성패가 카카오게임즈를 ‘퍼블리셔 중심 회사’에서 ‘흥행 IP를 보유한 제작사’로 전환시킬 열쇠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딘 대표 이미지. 카카오게임즈 제공

올해 3분기까지 ‘배틀그라운드’로 2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크래프톤도 IP 다양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언노운월즈 인수 후 ‘서브노티카’ 후속작을 개발 중이지만 자체 신작 라인업은 부진하다. ‘어비스 오브 던전’ 서비스 종료, ‘팰월드 모바일’ 법적 소송 등 악재도 이어지고 있다. ‘배틀그라운드’가 여전히 막강한 캐시카우인 것은 사실이나 단일 IP 의존도가 크다는 점이 여전히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넥슨·넷마블·시프트업, “IP 공장”으로 리스크 분산

반면 넥슨·넷마블은 다수의 온라인·모바일 IP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구조적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캐릭터·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는 IP를 꾸준히 축적해온 데다 외부 개발사 투자와 퍼블리싱을 병행하면서 ‘IP 파이프라인’을 넓히는 전략을 택해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타이틀이 부진하더라도 다른 게임이 공백을 메우는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넥슨의 경우 기존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 더해 ‘데이브 더 다이버’ 같은 중소 규모 타이틀과 콘솔·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신작을 연이어 선보이며 ‘좋은 게임을 다양하게 만든다’는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여기에 일정 수준 이상 흥행을 기록한 타이틀은 후속작·DLC·협업 콘텐츠로 확장하며 IP 다각화 전략을 쓰고 있어 단일 IP에 매달리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굿즈 맛집’ 넷마블과 넥슨은 게임 내 매출에 그치지 않고 웹툰·굿즈 등으로 IP를 확장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 수준의 완성된 미디어 믹스 모델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단일 게임에만 수익 구조를 의존하지 않겠다는 방향성은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대형 게임사들은 개발·운영 인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트리플 A급 작품과 중간 규모 실험작을 함께 출시하는 포트폴리오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 북미 최대 애니메이션 행사 사진. 시프트업 제공

신흥 강자로 떠오른 시프트업은 ‘승리의 여신: 니케’와 ‘스텔라 블레이드’라는 두 개의 강력한 IP를 앞세워 모바일과 콘솔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다. 두 타이틀 모두 국내와 해외 시장 모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며 회사의 외형·내실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실제 시프트업은 올해 3분기 755억원의 매출과 49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1%, 39.3% 증가한 수치다.

아울러 후속작·세계관 확장·머천다이징(MD) 등을 통해 장기 프랜차이즈로 키우려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다만 IP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는 아직 ‘쌍두마차 체제’에 가까운 만큼 추가 신작과 스핀오프 확보가 중장기 과제가 될 전망이다. 

IP 확장이 곧 밸류에이션…투자자 시각의 분기점

투자자들은 단일 IP 의존 기업에 대해 구조적 디스카운트를 적용하는 흐름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특정 게임 매출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회사는 라이프사이클 후반부에 접어들거나 이용자 기반이 축소될 경우 실적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규제 리스크, 플랫폼 정책 변화, 경쟁작 출시에 따른 점유율 변동 등이 겹치면 주가 변동성은 더욱 확대된다.

반대로 다양한 IP를 보유한 회사들은 개별 타이틀의 흥행 사이클을 상호 보완하면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미엄을 인정받는 경향이 강하다. IP 간 크로스 프로모션, 공통 세계관 활용, 동일 엔진·개발 인프라 공유 등을 통해 개발비와 마케팅비를 효율화할 수 있다는 점도 포트폴리오 전략의 강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1월17일 기준으로 11만6000원을 찍었던 카카오게임즈의 11일 기준 종가는 1만5960원으로 10분의 1가까이 줄었다. 2021년은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 발할라라이징’이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상인 대상을 수상했던 해다. 앞서 언급한 신작들의 기대감이 높지 않다는 평가다. 최근 우수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크래프톤 역시 지난 5월7일 39만3000원에 도달한 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1일 기준 종가는 24만1500원이다. 최승호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이은 인수기업 잡음과 다소 약한 신작 포트폴리오”에 대해 지적하면서 “델타포스, 발로란트 모바일의 등장이 PUBG 모바일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넥슨은 2021년 4월 이후 최고 종가를 기록하며 시가총액 3조1000억엔(한화 약 29조2497억원)을 돌파했다. IP 다양화와 신작 파이프라인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고, 이로 인해 시장 평가 또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향후 5년, 누가 살아남을까

결국 국내 게임사들의 기업가치는 ‘향후 5년 동안 얼마나 많이 좋은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와 ‘그중 몇 개를 장기 IP로 키워낼 수 있느냐’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펄어비스·카카오게임즈·크래프톤이 준비하고 있는 신작이 기존 단일 IP 의존 구조를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 넥슨·넷마블 등이 다작 전략을 넘어 글로벌 초대형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향후 밸류에이션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부터 게임을 많이 생산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산업 성숙도가 높아지고 이용자들도 많은 경험을 했다”며 “최근에는 좋은 게임을 꾸준히 만들고 IP 확장을 통해 그중 일부를 유저들에게 보여주는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송한석 기자
gkstjr11@kukinews.com
송한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