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지드래곤이 아쉬움을 딛고 9개월여 월드 투어에 굵직한 마침표를 찍었다. 완벽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숱한 논란 속 고척돔을 사흘간 가득 채운 ‘파워’(POWER)만큼은 지드래곤의 것이었다.
지드래곤은 14일 오후 서울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에서 ‘2025 월드 투어 [위버맨쉬] 인 서울 : 앙코르’(2025 WORLD TOUR [Übermensch] IN SEOUL : ENCORE)를 개최했다.
지난 3월 한국 고양에서 시작한 월드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다. 지드래곤은 그간 도쿄, 마닐라, 오사카, 마카오, 시드니, 멜버른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비롯해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프랑스 파리, 서울까지 총 17개 도시에서 39회 투어를 진행했다. ‘넘어서는 사람’으로서 강렬하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뜻을 담은 공연명답게 남다른 스케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야심 찬 제목이 무색하게 출발은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고양 첫 공연은 당일 급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30분 지연됐으나, 지드래곤은 그보다 43분 늦게 등장했다. 무엇보다 꽃샘추위 탓인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라이브 실력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
그로부터 약 8개월이 흘렀다. 시작부터 “피날레 쇼”라고 외친 지드래곤의 소회는 남달라 보였다. 그는 “이렇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돌 줄 몰랐다”며 “시작을 천재지변과 함께 해서 마음이 항상 무거웠다. 8개월 동안 지붕을 기다렸다. 고맙다”고 전했다.
12일부터 이날까지 3일간 진행된 콘서트에는 총 5만6100명 관객이 들었다. 지드래곤은 고양 공연에 이어 지난달 ‘2025 마마 어워즈’에서도 ‘라이브 논란’을 추가했지만 실질적인 타격은 없어 보였다. 플로어부터 3층까지 데이지봉(응원봉)으로 꽉 찬 돔 내부는 그저 장관이었다.
이날 ‘파워’로 포문을 연 지드래곤은 검은색 왕관에 화이트 프릴 재킷을 착용하고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무대 상단 대형 스크린들 중 메인 스크린에 문제가 생겨 화면이 멈췄다가 암전됐지만 객석의 시선은 온통 지드래곤에게 쏠려 있었다. 지드래곤은 현란하게 교차되는 레이저 선과 조명 아래 곳곳을 누비며 곡을 소화했다.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에서는 빅뱅 멤버 태양, 대성이 피처링한 각 파트를 가창해 두 번째 곡임에도 마지막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어 ‘미치고’(미치GO), ‘원 오브 어 카인드’(ONE OF A KIND)까지 마친 지드래곤은 “제가 돌아왔다. 오늘 다 쏟아붓겠다”고 약속했다. 팬들은 지드래곤의 본명 ‘권지용’을 연호하며 그를 힘껏 반겼다.
지드래곤의 말대로였다. 무대 위 그의 에너지는 물론, 컨페티와 불꽃 등 다양한 무대 효과가 아낌없이 더해지면서 공연은 도입부부터 피날레를 방불케 했다. 관객들은 ‘크레용’, ‘보나마나’, ‘버터플라이’(Butterfly), ‘너무 좋아’, ‘니가 뭔데’, ‘투데이’(Today), ‘삐딱하게’ 등 끝없는 히트곡 메들리에 응원봉과 함께 몸을 흔들었다.
지드래곤은 화답하듯 무대 아래로 내려가 팬들과 소통했다. ‘삐딱하게’에서는 방울이 달린 니트 모자를 쓰고선 관객들의 휴대전화 카메라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하는 등 팬서비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렇게 소통하는, 팬분들과 티키타카가 난무하는 공연을 하고 싶었다”던 그의 방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지드래곤은 지난 공연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모로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그는 “질과 양,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다 보니 도무지 안 되겠어서 머리를 잘랐다. 이 한 번을 위해 전담 팀을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선물”이라고 표현한 태양·대성, 그룹 비트펠라 하우스, 댄서 바다 등 게스트진도 그 고민의 흔적이었다. 비트박서 윙은 이번에도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 공연을 함께 꾸몄고, ‘투 배드’(TOO BAD)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다는 ‘스모크’ 챌린지도 선보였다.
날씨 문제로 장치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던 투어 첫 공연과 비교하면 다채로운 포인트가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지드래곤의 라이브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AR의 볼륨이 상당했고 지드래곤 역시 싱잉 파트를 랩으로 바꿔 부르거나 원래 음보다 훨씬 낮은 음으로 노래하는 등 정공법을 택하진 않았다. 다만 덕분에 전반적인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졌다.
지드래곤은 빅뱅 20주년 활동 계획을 귀띔해 기대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그는 “내년에는 빅뱅이 20살이다. 드디어 민증 같은 게 나오는 때다. 성인식이라서 19살 넘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4월부터 워밍업을 시작한다. 워크숍 같은 것”이라며 코첼라 페스티벌 출연 역시 언급했다.
앙코르 시작 전 슬로건 이벤트가 진행됐다. 팬들은 지드래곤이 나올 때까지 슬로건을 들어올린 채 ‘테이크 미’(TAKE ME)를 불렀다. 이 가운데 일부 관객들이 앙코르 공연 중 지드래곤의 토롯코 동선을 파악하고 자리를 임의로 옮겨 장내 혼란을 야기했다. 결국 관련 안내가 흘러나오고 다른 관객들이 “앉아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현장이 정돈됐다.
이후 지드래곤은 자신을 상징하는 데이지로 장식한 토롯코에 올라 등장했다. 그는 고척돔을 가득 채운 팬들을 눈에 담으며 ‘디스 러브’(THIS LOVE)를 열창했다. 또 다시 무대에 오른 태양, 대성과는 ‘위 라이크 투 파티’(WE LIKE 2 PARTY), ‘눈물뿐인 바보’를 완전체로 불렀고, 자신의 이름과 동명인 두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무제’로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