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신 병실로”…청춘의 한가운데서 암을 마주했다 [암을 이겨낸 청년들②]

“사회 대신 병실로”…청춘의 한가운데서 암을 마주했다 [암을 이겨낸 청년들②]

기사승인 2025-12-17 11:00:05 업데이트 2025-12-17 13:27:08
의료의 발전은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암 치료 환경을 바꿔놨다. 전체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를 넘었고, 수많은 이들이 병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청년기에 암을 겪은 이들은 학업, 취업, 인간관계 등 삶의 중요한 국면에서 오랜 기간 깊은 단절을 경험한다.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공백 속에서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치료를 넘어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7편에 걸쳐 함께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2012년 2월, 대기환경과학을 전공한 23세의 청년 정승훈 윤슬케어 대표는 졸업을 앞두고 평소 위염이 잦아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쓰린 정도여서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6개월 뒤 다시 위염이 도졌다. 이번 위염 증상은 한두 달 정도 더 오래갔다. 이상하게 여겨 다시 내시경을 했다. 이번엔 전혀 예상 밖의 소견이 나왔다. 의사는 “암이 의심된다”고 했다. 곧바로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고 영문도 모른 채 혈액내과로 보내졌다. ‘버킷림프종’이었다. 진단이 내려진 이날은 대학교 졸업식 다음 날이었다.

당황·무력감·두려움이 밀려왔다

공군 장교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암 진단과 동시에 군대에 갈 수 없게 됐다. 처음 느낀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10년간 태권도를 했고, 10㎞는 가뿐히 뛸 수 있었다. 건강했던 내가 혈액암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음으론 ‘무력감’이 찾아왔다. 친구들은 진로를 정하고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정 대표는 항암치료 일정을 잡고 병실로 향했다. 나만 ‘대학교 졸업생’인 채 정체돼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끝으론 ‘두려움’이 밀려왔다. 처음 들어보는 암이었고, 혈액암의 일종인 걸 알고선 드라마에 나오는 백혈병 환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버킷림프종은 백혈구 중 B림프구에서 기인하는 혈액암으로, 비호지킨 림프종에 속한다. 림프종은 백혈구 중 하나인 림프구가 악성 세포로 변한 종양이다. 버킷림프종이 생기면 대부분 전신에 발열이 나타나고 체중 감소를 겪는다. 버킷림프종의 특징은 암세포가 공격적이고 빠르게 증식한다는 점이다.

최근 선진국에서 버킷림프종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미국혈액학회 연례학술대회(ASH 2024)에서 공개된 ‘1990~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에서의 버킷림프종의 글로벌 부담 및 추세를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버킷림프종 발병률, 사망률, 장애보정손실년수(DALY)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총 유병률은 1만8072건에서 7만428건으로, 사망률은 705.62건에서 1514.39건으로, DALY는 3만1700.09년에서 5만1413.66년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한국은 OECD 38개국 중 지난 30년간 버킷림프종 발병률 증가폭이 가장 큰 나라인 것으로 조사됐다.

복부에 퍼진 암세포…마음이 더 아팠다

정 대표는 이미 진단 당시 암이 상당히 진행된 3기였다. 암세포가 복부에 많이 퍼져 있었고, 허벅지에도 통증이 나타났다. 

“치료받으며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친구들은 대학원에 가거나 회사에 취업해 돈 벌어서 부모님 선물도 사드리는데 저는 치료비를 의지하는 처지였거든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 속에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할 수 있는 거라곤 열심히 치료받는 것밖에 없었다. 6번의 항암치료와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포함해 약 8개월간 고강도 치료를 받았다. 5차 항암부터 부작용 조절이 되지 않았다. 비급여 약물에 대한 비용 부담은 갈수록 늘어갔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던 순간도 많았다. 열악한 병실 환경, 고령 환자들과의 마찰, 암에 대한 편견은 무거운 돌처럼 얹어졌다. 부정적인 생각은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뭐 했길래 아프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줬는데 그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뭐 하고 있지’ 싶었어요. 항암치료가 이어지며 부작용이 늘어나니 육체적·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되더라고요.”

다시 처음부터 출발선에 서다

치료를 모두 마치고 나니 계절은 순식간에 봄에서 겨울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치료가 끝났다고 삶이 바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기상청 공무원 시험을 보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 목에 혹이 잡혔다. 암 재발이 의심돼 1년간 조직검사와 경과 관찰을 이어오다가 수술로 제거했다. 다행히 죽은 세포로 판명됐지만, ‘언제라도 암이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정 대표는 그때 생각했다. “이건 하늘이 나한테 ‘다시 네 삶을 돌아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라고. 

대학 전공과 관련된 것들을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 살면서 지금까지 즐거웠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과학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차를 좋아해 찻집에서 일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그는 조금씩 자신의 진로와 행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년 조금 넘게 영업사원도 했다.

“영업사원의 장점은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정기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다녀야 했고, 언제 컨디션이 나빠질지 몰라 일반 회사에 다니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3년 정승훈 윤슬케어 대표가 항암 치료를 마치고 공원 산책을 한 모습. 정승훈 대표 제공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고 나니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지만, 때때로 외로움이 밀려왔다. 같은 암생존자들끼리 정서적으로 연결되고 정보를 공유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정 대표가 암생존자를 위한 사회적기업 ‘윤슬케어’를 창업한 이유다.

처음에는 정서적 지지를 위한 다이어리 제작부터 시작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된 ‘힐링 다이어리’는 전국의 암생존자 통합지지센터에 기부됐다. 암생존자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3개월간 10명 내외의 그룹이 매주 만나 운동하고 대화하며 서로를 지지하는 구조다. ‘병원 동행 서비스’도 기획했다. 보호자가 병원에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자와 동행해 진료 내용을 정리해 보호자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이다. 치료 계획이나 약 복용법 등 중요한 정보를 정리해 ‘소통의 다리’ 역할을 했다.

‘나’라는 존재는 계속 남아

정 대표는 청년 암생존자들이 사회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감정’을 가장 많이 겪는다고 말한다. 환자인지, 직장인인지, 학생인지 애매한 경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그냥 암 치료받았을 뿐 나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라며 암생존자들이 환자라는 정체성에 갇혀선 안 된다고 말한다.

“청년 암생존자들은 공통적으로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치료가 끝나도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거죠. 고립감은 커져만 가는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특별한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잠시라도 암으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있다면 불안 해소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지난 5월 정승훈 윤슬케어 대표가 옥스팜 트래일워커 대회에 참여해 50㎞ 완주 메달을 획득했다. 정승훈 대표 제공

현재 정 대표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의료법 윤리학 협동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암생존자이면서 창업가이자 서비스 기획자로서 실무를 넘어 학문적 기반을 다지고자 하는 열망이 그를 다시 책상 앞에 앉혔다. 그동안 해온 일들이 직관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학문적으로 더 깊이 알고 실무에 녹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청년들이 암을 겪어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졌다.

“암 치료를 끝내도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암을 극복하고 더 건강하고 강해진 내가 있을 겁니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만 집중하세요. 이내 다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겁니다. 암 때문에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습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외로워 마세요.”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