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의 발전은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암 치료 환경을 바꿔놨다. 전체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를 넘었고, 수많은 이들이 병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청년기에 암을 겪은 이들은 학업, 취업, 인간관계 등 삶의 중요한 국면에서 오랜 기간 깊은 단절을 경험한다.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공백 속에서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치료를 넘어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7편에 걸쳐 함께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
지난 2018년 당시 32세였던 서지연 부산시의회 의원은 일본 도쿄에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자까지 다 발급받은 뒤 건강검진으로 병원을 찾았다. “유방암 2기입니다.” 현재진행형이던 서 의원의 청춘에 ‘쉼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됐다
일본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도, 공부도 모두 멈춰버렸다. 직장인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자 막막해졌다. 병원비뿐만 아니라 카드 결재비, 핸드폰 통신비, 이사비 등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부터 속눈썹까지 모두 빠졌다. 가족들에게만큼은 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암 판정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인데 항암으로 바뀐 딸의 외형을 부모님이 보셨을 때 어떤 충격을 받으실지 상상이 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최대한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 집중하며 원룸에서 혼자 지내며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줄이자, 자신과 상황이 비슷한 암환자들에게 시선이 갔다. 다른 20·30대 환자들은 상황이 어떨지, 완치 이후엔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졌다. 병실에서 조사하며 유방암 환자의 약 20%가 20·30대 청년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유방암 환우 인터넷카페에서 찾아본 환자들은 대부분이 40대 이상이었다. 청년 암환자들이 학업과 취업, 결혼과 출산 등 여러 고민을 안고 있지만, 마음을 터놓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사단법인 ‘쉼표’는 그렇게 탄생했다.
‘젊유애’(젊은 유방암 애프터케어)라는 이름의 비영리 민간단체로 시작한 쉼표는 유방암 환자 중심에서 점차 모든 암환자로 폭넓게 영역을 확장했다.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업하며 젊은 암생존자들이 치료 후의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왔고, 그런 경험을 정책으로 엮었다. 운동법이나 식단 등 단순 정보 제공부터 유방암 인식 개선 캠페인이나 건강검진과 보험 가입의 중요성 등을 주제로 세미나도 개최했다.
“저희의 모토는 ‘암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치료 이후의 삶에 집중하게 하자’였습니다. 암은 맞춤표가 아니라 쉼표입니다. 암으로 인해 잠깐 쉬어갈 뿐이지 끝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합병증…후회가 정책으로
서 의원도 암 치료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치료를 마치고 5년이 흘렀지만, 그 사이 유방암의 흔한 합병증 중 하나인 림프부종으로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림프부종은 유방암 수술 과정에서 림프절을 많이 절제했을 때 발병 위험이 커진다. 림프절을 많이 제거하지 않았더라도 림프절 기능이 감소하면 부종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임력 보존’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임력 보존이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른 배아의 생성 보존과 그 준비 행위 및 암 치료 전후에 임신 가능성을 위한 호르몬 요법 등을 말한다.
서 의원은 다른 젊은 암환자들이 자신과 같은 후회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암환자가 치료 이후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적 지원을 담은 법안을 마련해 국회 문을 두드렸다. 이후 암생존자의 사회 복귀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하는 ‘암관리법’ 개정안이 2022년 6월 국회를 통과했다.
2023년 1월엔 전국 최초로 난임 시술비 지원사업과 암환자 의료비 지원사업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상자들에게 시술비 일부를 지원하는 ‘부산시 가임력 보존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전국으로 확산해 국가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는 데 이바지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 20~49세 남녀를 대상으로 가임력 확인에 필요한 필수 검사 비용을 지원하는 ‘가임력 검사비 지원사업’(임신 사전 건강관리 사업)을 도입했다.
치료는 끝이 있다
서 의원은 국내 암 치료 환경과 성적은 글로벌 최고 수준을 달리지만, 암생존자 관리는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경력 단절, 암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 관리 돌봄 등 여러 부분에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국내 암 생존율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제는 암 예방과 치료 중심이 아닌 ‘에프터 케어’로 가야 합니다. 청년 암생존자가 나이를 먹으며 중장년층이 되기 때문에 정부의 적정한 생애주기별 개입도 중요합니다.
암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했다.
“치료는 끝이 있습니다. 청년들이 암을 겪는 기간 동안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지 말고, 미래의 일을 설계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암 때문에 숨지 말고, 일상으로 나오세요. 충분히 꿈을 펼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