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에서 조언자가 된 AI…의사 책임은 ‘그대로’ [의료AI 시대③]

도구에서 조언자가 된 AI…의사 책임은 ‘그대로’ [의료AI 시대③]

기사승인 2025-12-19 15:00:04
2025년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는 인공지능(AI)이다. 세계 각국이 AI 개발과 고도화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그 흐름은 의료 현장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변화 속에서 병원과 정부의 대응, 그리고 의료 AI를 둘러싼 법적 책임의 쟁점을 세 편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에 따라 의료 AI는 의사의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진료 판단을 뒷받침하는 조언자의 역할까지 맡을 전망이다. 의료진이 의료 AI 활용에 적극 나서는 가운데, 프로그램의 조언이 정교해질수록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로 대표되는 초기 의료 AI와 비교하면 현재 의료 AI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초기 의료 AI가 제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도구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환자 데이터를 입력해 상황에 맞는 조언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문가들은 의료 AI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면서 장기적으로는 의료 AI를 탑재한 로봇 의사의 등장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고도화되고 있는 의료 AI는 로봇이나 의료기기에 탑재되는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며 “의료기관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환자 관리 중요성이 커지는 흐름을 고려하면 재활 보조 AI 로봇이나 수술 보조 AI 로봇이 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의료 AI가 물리치료사나 의사를 대신해 환자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을 설계하거나, 인력이 부족한 수술실에서 의사의 판단을 돕는 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다”며 “의료 AI의 발전 속도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 현장에서 의료 AI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법적 분쟁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 AI가 잘못된 조언을 제시했을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AI와 관련된 법적 책임의 모호함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시도도 이어져 왔다. 지난 2024년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2026년 1월 시행을 앞둔 AI 기본법과, 올해 1월부터 시행된 디지털의료제품법을 통해 AI 전반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다만 이들 제도가 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의료 AI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 AI가 다른 AI 프로그램에 비해 법적 책임 논란을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로는 의료법에 ‘의료 행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점이 꼽힌다. 이로 인해 의료 행위의 개념은 주로 법원의 판례를 통해 ‘의료인이 전문지식을 토대로 수행하는 행위’로 형성돼 왔다.

문제는 의료 AI가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 작동을 목표로 발전하는 일반적인 AI와 달리, 의료인과 함께해야만 의료 행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의료 AI가 판단 과정에 깊이 관여할수록 책임의 주체와 범위를 가르는 기준이 더욱 모호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법적으로 의료 행위는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미래에는 개념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의료인의 책임이 오히려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이찬종 기자

또한 “AI를 탑재한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보다는, 의료 행위 당시 의료인이 환자에게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의료 행위 시점에 의료인이 의료기기 상태를 적절히 확인하는 등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도 주요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현장에서 의료 AI 활용에 따른 법적 책임의 비중은 향후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의료 AI와 관련한 의료사고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아 법적 판단에 한계가 있지만, 기술 발전이 제도와 법 개정을 이끌며 책임의 범위를 점차 구체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변호사는 “의료 소송에서 중요한 점은 의료인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내린 판단에 대해서는 재량이 인정된다는 것”이라며 “의료사고 발생 시 정부가 인증한 의료 AI나 AI 의료기기를 활용했다는 점 역시 법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논의가 학계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법적 판단은 결국 판례가 축적되면서 구체화될 수 있다”며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법 제도 정비가 다소 늦은 측면은 있지만, 의료인의 주의 의무와 설명 의무를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