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00)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00)

세잔과 생트 빅투아르 산: 큐비즘의 문턱에서

기사승인 2025-12-22 09:00:03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과 아르크 강 계곡의 고가교, 1882~85, 캔버스에 유채, 65.4x81.6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잔의 시선으로 본 생트 빅투아르 산

생트 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은 엑상프로방스 근처 아르크 강 계곡 위로 우뚝 솟아, 그 독특한 실루엣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이 장엄한 풍경을 그리기 위해 누이의 집 뒤편, 몽브리앙 영지 근처 꼭대기에 섰다. 

그가 선택한 구도는 인간의 흔적을 최소화한다. 오르세 미술관의 그림과 달리 이웃 농가의 담장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세잔은 인상주의의 찰나적 인상을 넘어서, “박물관에 걸릴 만큼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예술”을 꿈꿨다. 그의 붓끝에서 자연은 해체되고, 다시 구성되며, 근원적 형태로 태어난다.

이 목가적인 풍경을 가로지르는 철도 고가교는 고대 로마 수도교를 연상시키며,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상징한다. 이 장면은 세잔이 존경하던 17세기 프랑스 풍경화가인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고전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폴 세잔, 가르단에서(Gardanne), 1885~86, 캔버스에 유채, 92.1x73.2cm, 브루클린 미술관

평면화 된 공간 새로운 시선

푸른 언덕과 초록나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는 인간이 만든 건축과 대비되며, 자연의 생동감과 인위적인 구조 사이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색채의 대조는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세잔은 낮고 안정적인 시점에서 풍경을 바라본다. 수직적인 요소들이 강조되며, 화면은 깊이감보다는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전통적인 원근법을 따르기 보다는, 모든 형태를 한 화면 안에 고르게 배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는 세잔이 회화의 구조를 새롭게 탐색하려 했다는 증거다.

미완성의 흔적, 과정의 미학

그림의 오른쪽 끝과 종탑 위에는 색칠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곳엔 연필로 그린 밑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수채화처럼 바탕이 살아 있다. 이런 미완성의 흔적은 세잔이 완성된 결과보다 ‘그려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걸 보여준다. 

이 드로잉은 브루클린 박물관이 소장한 두 점의 세잔 작품 중 하나로, 2019년 “프렌치 모던 전”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되었다. 

세잔이 던지는 질문

세잔의 그림은 단순히 풍경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 감성과 구조, 완성과 과정 사이의 대화를 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폴 세잔, 가르단에서, 1885~86, 캔버스에 유채, 80x64.1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색의 해체, 형태의 단순화

메트로포리탄의 이 작품은 브루클린 미술관의 그림보다 후기에 그려졌다. 화면에서 재현적 색채와 형태가 사라져, 무성한 나무들이 없어지고, 입체감도 희미해져 평면적인 인상이 더욱 강해진다. 마을의 구조는 본질적인 입면체로 단순화되며, 수채화처럼 옅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 작품은 1885년 여름부터 1886년 봄 사이, 엑상프로방스 인근 언덕 마을 가르단의 세 가지 풍경 중 하나로, 세잔의 풍경화가 점차 구조적이고 추상적인 방향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입체파와 추상화의 씨앗, 세잔의 건축물

세잔이 그린 건물들은 단순히 배경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여러 면이 겹쳐 보이고, 각이 살아있는 모습은 마치 조각처럼 느껴진다. 이런 구조적인 표현은 나중에 등장한 입체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조르주 브라크, 레스타크의 다리(Le viaduct a L’Estaque), 1908, 캔버스에 유채, 퐁피두 센터

 입체주의의 전주곡: 세잔에서 브라크와 피카소로

세잔이 1906년 사망하고 회고전이 열렸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공동작업으로 브라크와 피카소는 세잔에 대한 존경을 담아 에스타크에서 여름을 보내며 일련의 풍경화를 그린다. 그들은 초기 입체주의의 중요한 시기에 세잔이 남긴 조형적 공간에 대한 탐구가 지속되었다. 

하늘, 지붕, 벽, 나무들이 아직도 하나하나의 대상으로 구별되며 자연의 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고 있다. 자연광과 원근법이 보이고 있어 아직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 시기의 두 화가의 작품은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폴 세잔, <자 드 부팡의 수영장>, 약 1885~86, 캔버스에 유채, 64.8x81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바람의 기억, 세잔의 마음이 머물던 곳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Aix) 근교에는 세잔 가족의 영지, ‘바람의 집’인 자 드 부팡(Jas de Bouffan)이 있다. 세잔은 이곳을 매우 사랑했고 무려 25년 넘게 이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에게 자 드 부팡은 바람의 기억이 깃든 특별한 장소였다. 그러나 이제는 마르세유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접하게 되었다. 

오솔길이 이끄는 풍경, 자 드 부팡

1880년대 중반에 그린 이 작품에서도 세잔은 자주 등장시키던 오솔길을 다시 그린다. 이 길은 밤나무가 양옆을 감싸며, 18세기 양식의 주택 뒤편 정원으로 이어진다.

정원과 주택 사이에는 난간이 있고, 그 근처엔 물을 모으는 연못과 중앙의 세면대가 자리하고 있다. 연못 양쪽에는 사자 머리 모양의 물받이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중 하나가 그림의 배경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세잔은 이런 익숙한 풍경을 반복해서 관찰하고 그리며, 공간의 구조와 질서를 탐구했다.  

풍경 너머의 감정; 기억

세잔은 자 드 부팡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린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억과 감정을 함께 담으려 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나무와 길이 아니라, 세잔의 삶과 마음에 깃든 풍경이다.  

폴 세잔, 자 드 부팡 근처의 나무와 집들, 1885~86, 캔버스에 유채, 67.9x121.3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리먼 컬렉션

모더니즘의 문을 연 화가

이 작품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세잔은 20세기 모더니즘(modernism) 미술의 문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기존의 회화 형식에서 벗어나, 형태와 원근법을 새롭게 바라보며 그림의 구조 자체에 도전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회화의 언어를 새로 만드는 실험이었다. 

자 드 부팡에서 시작된 실험

<자 드 부팡 근처의 나무와 집들>은 “모티브를 따라(sur le motif)” 그린 작품으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린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붓터치는 절제되어 있고, 노란색과 초록색의 색조는 단순하면서도 조화롭다. 

붓질 없는 공간, 회화의 물성

이 작품 속 앙상한 나무들은 유화임에도 수채화처럼 옅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나무들은 화면 속에서 프리즈(frieze: 고전 건축의 띠 모양의 장식물)처럼 반복되며, 마치 리듬을 이루듯 대비를 만들어낸다. 이런 표현은 세잔이 자연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회화의 본질을 어떻게 탐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폴 세잔, <도메인 생 조셉(Domaine Saint-Joseph)의 전망>, 188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65.1x81.3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13년 아모리 쇼

1913년 뉴욕에서 열린 역사적인 아모리 쇼(Armory Show)는 미국 최초의 근대 미술 전시였다. 세잔, 반 고흐,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 뒤샹 등 여러 유럽의 현대 미술 거장들이 참여했다. 19세기 작품들을 비롯하여 야수파, 입체파, 추상주의 등 유럽 미술 작품이 처음으로 소개되어, 미국 미술계의 충격을 안기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뉴욕 제69연대 병기고(Armory)에서 열렸기 때문에 ‘아모리 쇼’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고의 낙찰가: 절벽 위의 모더니즘

그 중심에는 세잔의 한 작품이 있었다. 엑상프로방스와 르 톨로네 사이, 콜린 데 포부르 언덕에 위치한 예수회의 소유지 생 조셉의 풍경을 담은 이 그림은, 당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최고가로 낙찰 받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반응은 엇갈렸다. 

비어 있음의 완성: 세잔의 생 조세프 풍경 

뉴욕 아메리카는 이 그림을 두고 “세잔의 작품으로 보기 힘들다”며 혹평했다. “잠정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며 구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당시 관람객들이 세잔의 회화적 실험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캔버스의 많은 부분이 비어 있었고, 형태는 단순했으며, 색은 옅었다. 그러나 바로 그 ‘비어 있음’ 이야말로 세잔이 완성이라고 여긴 요소였다.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여백의 미학’이고, 오히려 그 비어 있음이 그림을 더 깊고 풍부하게 해준다. 이 그림은 세잔이 직접 서명한 몇 안 되는 ‘완성작’ 중 하나다.  

단순함 속에 담긴 깊이

세잔의 그림은 겉보기엔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연과 공간, 구조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이 담겨 있다. 붓질은 절제되어 있고, 색은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퍼진다. 그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재현’을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형태의 본질과 그것이 공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했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
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