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말고도 답은 있다”…현장에서 말하는 대책 [조류독감, 반복되는 농민 재난②]

“살처분 말고도 답은 있다”…현장에서 말하는 대책 [조류독감, 반복되는 농민 재난②]

기사승인 2025-12-24 07:00:04
조류독감은 더 이상 돌발 악재가 아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서는 거의 매년 겨울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발생 시기도, 대응 방식도 비슷하다. 살처분과 이동 제한, 방역 강화가 반복된다. 그럼에도 농가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반복되는 조류독감 피해 속에서 농민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목소리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조류독감이 매년 반복되면서 농민들은 더 이상 “방역을 강화하자”는 말만으로는 현장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대책은 새로운 제도나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실제로 지킬 수 있는 방역 기준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보상 체계다. 

수도권에서 오랜 기간 양계업을 해온 한 농가 단체장은 최근 쿠키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조류독감 대응의 핵심 문제로 현실과 동떨어진 방역 지침을 먼저 꼽았다. 방역의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현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기준과 지침이 늘어나면서 부담만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농가 단체장은 “정부에서는 어쨌든 AI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방역 대책을 강화하는데, 좀 심할 정도로 한다”며 “농가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도 하라는 지침이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실제 방역 지침 가운데에는 농가 현실과 맞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는 “쥐구멍까지 다 막으라고 한다. 넓은 양계장 안에 쥐가 어디로 들어오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들어갈 때마다 옷을 갈아 입고, 신발 갈아 신고, 장갑 갈아 끼고, 손 소독까지 다 하라고 하는데, 하루에도 열 번 스무 번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런 지침을 지키지 못한 부분이 사후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그는 “농가들이 못 지키면 발생했을 때 CCTV를 돌려 확인하고, 그걸로 보상금을 까버린다”며 “농가들 보고 죽으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보상 체계 역시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한계다. 현행 제도상 살처분 보상은 최대 80%가 상한이다. 방역 미흡으로 판단될 경우 보상률은 더 낮아진다.

이와 함께 농민들은 조류독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철새 유입이 농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도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 이후의 부담과 책임은 농가에 집중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발생 농가에서는 엄청난 경제적인 손실을 입는데 아무리 잘해도 보상이 최대 80%”라며 “방역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AI가 왔을 때는 90%나 100%를 줘도 되는 것 아니냐, 이런 부분을 수차례 건의했지만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40% 정도 받는 농가도 있다. 그러면 농가에서 양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힘들어진다”고 했다.

이와 관련 국회에서는 살처분 보상 기준을 손질하려는 입법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구제역 등 1종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농가가 받을 수 있는 최대 보상금 비율을 현행 80%에서 100%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상 문제와 함께 농민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한계는 계란 수급과 유통 구조다. 조류독감으로 살처분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생산자와의 협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그는 “정부 정책은 부족하면 수입하면 된다는 식”이라며 “계란이 부족한 기간은 길어야 3~6개월인데, 그때마다 수입부터 얘기하는 건 농가 입장에서는 답답하다”고 했다.

유통 구조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마트에서 계란 한 판이 8000원에 팔려도 농가에서 받는 돈은 6000원도 안 된다”며 “유통 마진이 2000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생산비 부담은 커지는데, 가격 결정과 유통 과정에서는 농가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계란 가격은 생산자 단체가 수급을 보고 정해왔는데, 최근에는 공정위 조사 등으로 가격을 올려야 할 때도, 내려야 할 때도 손을 못 대는 상황”이라며 “이러다 보니 농가도 정부도 다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세종=김태구 기자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
김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