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 레스타크의 기억
1876년,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에게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인근에 있는 마을 레스타크(L’Estaque)는 프로방스의 빛과 색, 구조와 형태를 실험할 수 있는 조용한 실험실이었다.
그는 스승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마을을 “마치 트럼프 카드 같아요. 푸른 바다 위로 붉은 지붕들이…” 라고 묘사하며 강렬한 태양 아래 사물들이 검정과 흰색뿐만 아니라 파란색, 빨간색, 갈색, 보라색으로 실루엣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풍경 속 구조의 탐구
세잔은 보불전쟁 중 은행가 아버지의 재력 덕분에 참전을 피할 수 있었다. 전쟁 중 레스타크에 온 이후 10년 동안 레스타크의 풍경을 약 20 점 이상 그렸고, 그중 12 점은 마르세유 만을 향하거나 그 건너편에서 바라본 시점이다.
현대 독일 문학의 거장으로 노벨문학상을 탄 페터 한트케(Peter Handke)는 “세잔의 산, 생트 빅투아르의 가르침”에서 “은신의 시기에 그린 그림은 대부분 흑백으로 겨울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새빨간 지붕이 펼쳐진 그 마을은 점차 그의 ‘카드놀이’가 되었다”고 적었다.
색 원근법, 구조의 단순화
세잔의 색채 이론은 명확했다. 따뜻한 붉은색 계열은 전진감을 주고, 차가운 푸른색 계열은 후퇴감을 준다. <레스타크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만>에서 전경의 붉은 지붕, 중경의 초록 숲, 후경의 푸른 산은 이러한 색원근법의 실험을 보여준다. 이름 없는 마을, 잔잔한 바다, 어울리지 않는 굴뚝, 세잔은 매력적이지 않은 풍경 속에서 회화의 본질을 찾았다.
그는 세기말에 이르러 레스타크 주변에 정유 공장이 들어서자, 그곳을 그리기를 중단하였다.
오른쪽: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의 오차드(Orchard at Pontoise), 1877
세잔의 시선이 머문 곳
1870년대 초, 세잔은 피사로와의 교류를 통해 팔레트에 밝은 색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는 전통적인 원근법을 거부하고 화면을 다양한 평면으로 분할하며 새로운 시각 언어를 구축했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레스타크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만>은 이러한 변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네 개의 뚜렷한 구역으로 나뉜다. 두껍게 칠해져 가장 무게감이 있는 강둑, 유려하게 펼쳐진 수면, 단단한 형태의 산맥, 그리고 얇게 그려진 하늘의 띠. 모든 선은 왼쪽 프레임 밖의 한 지점으로 수렴하며, 그곳에서 만은 닫힌다. 이처럼 모티브가 화면에 의해 잘려 나간 듯한 시야는 세잔 특유의 공간해석을 보여준다.
그림 한 점이 몰고온 혁신의 여정
1894년,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후원자이자 화가였던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의 유증으로 프랑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세잔의 첫 공식 수집품이 되었다.
당시 뤽상브르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이 낯선 구도에 당혹감을 느꼈지만, 화가들은 매료되었다. 그 충격은 이후 야수파와 입체파 화가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세잔이 바라본 그 풍경을 따라 브라크, 뒤피, 드랭은 레스타크 호숫가에 이젤을 세웠다.
레스타크에서 시작된 변화
1876년, 세잔의 붓터치는 두껍고 거칠었으며, 화면은 묵직한 색과 형태로 가득 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의 그림은 점점 달라진다. 1882 년에서 1885년 사이에 그린 <레스타크의 절벽>에서 붓터치는 더욱 강렬하고 단호해 졌으며, 색채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공간을 만드는 도구가 된다.
색으로 만든 깊이, 색원근법
<레스타크의 절벽>은 세잔이 실험한 ‘색원근법’의 대표작이다. 붉은 절벽은 따뜻한 색 덕분에 가까이 느껴지고, 뒤쪽의 푸른 바위와 초록 숲, 연한 푸른 산은 점점 멀어지며 깊이를 만들어 낸다. 선으로 공간을 나누던 기존 원근법이 아닌, 세잔은 색의 온도와 밝기를 이용해 공간을 구성했다. 이 방식은 이후 입체파와 추상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색으로 공간을 만드는 소나무
세잔은 자신의 작품에 특별한 이름을 붙인 적이 한 번도 없다. <키 큰 소나무>는 엑상프로방스의 남동쪽 아크강변에 우뚝 솟아난 커다란 소나무 그림인데, 이 나무에는 세잔의 추억이 녹아 있다.
강에서 수영을 한 후 그는 친구들과 함께 이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었고, 나중에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중학교 동창인 에밀 졸라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물었다.
“아크강변의 그 소나무를 기억하니?”
심지어 세잔은 나무 위에서, 가지 사이에 불어오는 차가운 미스트랄에 관한 시를 쓰기도 했다. 페터 한트케는 <키 큰 소나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이 그림에서도 바람이 그대로 느껴진다. 특히 “바깥 벌판에서”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홀로 솟아 있는 구부정한 자태에서. 나무는 자신이 뿌리박고 자란 땅을 고원의 평지처럼 변신시켰고, 사방으로 비틀리며 자란 가지와 의상처럼 펼쳐진, 수없이 다양한 농담의 초록 바늘 잎새들은 주변을 둘러싼 텅 빈 공간을 저절로 진동하게 만든다.”
큰 소나무는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지만 이처럼 단독 주인공으로 그려진 그림은 없다.
계산보다 직관, 세잔의 균형 감각
신인상주의자들은 색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점묘법을 시도했지만, 그 방식은 지나치게 계산적이었고, 지속되기 어려웠다. 세잔은 달랐다. 그는 감각과 구조 질서 사이의 균형을 직관적으로 추론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키 큰 소나무>이다.
이 작품은 색으로 깊이를 만들고, 형태를 세우고,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조용한 선언이다.
세잔의 산, 생트 빅투아르의 영혼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의 전원 풍경을 압도하는 생트 빅투아르 산은, 폴 세잔에게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었다. 험준하고 깎아질 듯한 그 봉우리는 세잔의 고향을 상징하는 존재였고, 프로방스의 거친 풍경과 사람들의 기질을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세잔은 이 산을 평생에 걸쳐 수십 차례 그렸다. 다양한 시점과 계절, 빛의 변화 속에서 그는 매번 새로운 분위기를 포착했고, 그 중에서도 한 작품은 세 점의 캔버스 중 가장 기념비적이고 완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세잔의 색채 실험과 구도에 대한 집념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색채로 그린 고독한 봉우리
그는 광활함과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색의 대비를 적극 활용했다. 녹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대지는 시원한 파란색과 분홍빛으로 칠해진 생트 빅투아르 산으로 시선을 이끈다. 전경과 배경에는 미세한 붉은색이 더해져 전체적인 시각적 통일감을 형성하며, 휘날리는 우산소나무 가지들은 산의 윤곽을 따라 뻗어 있어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이는 세잔이 즐겨 사용하던 구도 기법 중 하나였다.
이해 받지 못한 그림, 시대를 통한 감동
이 작품이 처음 엑상프로방스에서 열린 아마추어 작가 전시회에 등장했을 때, 관람객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젊은 시인 요하킴 가스케(Joachim Gasquet)는 이 그림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세잔은 그의 진심 어린 찬사에 감사하며 그림을 선물했다.
이 작품은 1880년 이후 세잔의 서명이 남겨진 몇 안 되는 그림 중 하나로, 그의 진정성과 예술적 확신을 보여준다.
코톨드의 눈에 비친 세잔의 마법
세잔에 대한 비평은 이후 극적으로 바뀌었다. 영국의 수집가 사뮤엘 코톨드(Samuel Courtauld)는 1922년 처음 세잔의 그림을 접했을 때 “마법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의 열정은 세잔의 작품과 드로잉을 모은 중요한 컬렉션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코톨드 미술관은 영국에서 세잔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은 단지 산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애정, 자연에 대한 경외 그리고 예술에 대한 집념이 빚어낸 하나의 정신적 풍경이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