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과 고환율, 소비 위축이 겹친 올해 패션·뷰티 산업은 지난해와 유사한 흐름 속에서 명암이 더욱 뚜렷해진 한 해로 평가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이상고온과 내수 침체 여파로 주요 패션 브랜드들이 역성장을 기록한 반면, SPA 브랜드와 플랫폼 중심 유통 구조는 존재감을 확대했다. 뷰티업계 역시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인디 브랜드·ODM 중심의 재편 흐름이 한층 분명해졌다.
패션 대기업 줄줄이 역성장
소비 심리 위축과 계절성 붕괴는 패션업계에 직격탄이 됐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한섬, LF,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오롱FnC 등 주요 패션 대기업들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모두 매출 또는 영업이익이 감소하며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업계 전반이 역성장을 기록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매출이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감소했고, LF·한섬·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업계는 성수기인 4분기 아우터 판매 회복을 기대하고 있으나, 고환율에 따른 원가 부담과 내수 침체로 반등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불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건 ‘가성비’와 ‘플랫폼’
반면, 고물가 국면에서 가성비를 앞세운 SPA 브랜드들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유니클로는 한국 시장에서 2년 연속 매출 1조원을 넘기며 회복세를 굳혔고, 탑텐·스파오 등 토종 SPA 역시 오프라인 확대와 상품력 개선으로 성장 흐름을 이어갔다.
유통 채널의 무게 중심도 브랜드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무신사는 2년 연속 연 매출 1조원 돌파가 유력한 상황이다. 무신사의 최근 8년(2016~2024)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CAGR)은 50.51%에 달한다. 매출액은 2016년 472억원에서 지난해 1조2427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무신사는 매출액 1조원 클럽에 처음 진입했고, 같은 기간 거래액(GMV) 기준 연평균 성장률도 47.67%로 업계 평균을 웃돌았다. 에이블리·지그재그 등도 거래액을 빠르게 키우며 존재감을 확대했다. 다만 이 같은 성장 뒤편에서는 브랜드 자체 매출 감소와 수익성 저하라는 구조적 한계도 동시에 드러났다는 평가다.
K-뷰티 수출 100억달러 돌파…중국 의존 낮추고 글로벌 분산
뷰티업계는 전반적으로 패션보다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올해 1~11월 누적 기준 K-뷰티 화장품 수출액은 103억 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처음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중국 중심이던 수출 구조는 미국·일본·유럽 등으로 빠르게 다변화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간 성적표는 엇갈렸다. 탈중국 전략에 속도를 낸 기업은 실적과 수익성을 동시에 개선한 반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회복 속도가 더뎠다. 동시에 에이피알 등 신흥 기업이 급부상하며 국내 화장품 업계의 세대교체 흐름도 가속화됐다. 에이피알은 지난해 2월 코스피에 상장한 지 약 1년 반 만에 주가가 250% 이상 올라 올해 8월 6일 종가 기준 시총 7조9322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화장품 업종 시가총액 1위였던 아모레퍼시픽(7조5339억 원)을 제친 것이다.
CJ올리브영 역시 K-뷰티 글로벌 확산의 핵심 채널로 자리 잡았다. 올해 1~11월 기준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발생한 외국인 매출은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서며 전체 매출의 약 25%를 차지했다. 이는 2022년 연간 실적 대비 약 26배 성장한 수치다. 글로벌텍스프리 기준 국내 화장품 결제의 88%가 올리브영에서 이뤄졌으며, 귀국 후 글로벌몰로 이어지는 소비도 늘고 있다. 현재 올리브영 글로벌몰은 150여 개국에서 서비스되며 약 336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인디 브랜드 확장, ODM·OEM이 받쳤다
K-뷰티 성장의 핵심 동력은 인디 브랜드와 이를 뒷받침한 ODM·OEM 기업이다. 기초 화장품 중심의 고기능 제품 수요가 늘면서, 코스맥스·한국콜마·코스메카코리아 등은 글로벌 고객사 수주 확대와 함께 생산능력 확충에 나섰다.
한국콜마는 2025년 3분기 매출이 6,830억원(+9.0%), 영업이익 583억원(+6.9%)를 기록하며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냈고, 코스맥스 역시 매출이 5,856억원(+10.5%)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는 모두 매출 2조원을 넘어서는 등 업계 톱 티어의 외형 성장도 확인된다.
이들 기업은 북미·동남아·중국 등 해외 생산 거점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넓히며, K-뷰티 이미지를 기존 ‘가성비’에서 ‘트렌디·프리미엄’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애경산업 매각…뷰티 산업 재편 신호탄
연말 들어서는 산업 구조 재편을 상징하는 거래도 등장했다. 애경그룹은 애경산업을 태광산업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결정하며, 오너 중심 소비재 그룹 구조에 변화의 신호를 보냈다. 태광산업 컨소시엄은 지난 10월 애경산업 최대주주 지분 63.13%를 약 4700억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고 계약금 5%를 납부했다. 거래 종결은 내년 2월경 예정돼 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소비 위축 국면이 길어지면서 브랜드 단독 성장에는 분명한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며 “플랫폼과 SPA 중심의 경쟁 구도 속에서 브랜드 정체성과 가격 전략을 동시에 재정립하지 못하면 실적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뷰티업계 역시 성장 국면 속에서 경쟁의 기준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K-뷰티는 이미 중국 의존 산업을 벗어났고, 인디 브랜드와 ODM 중심의 구조가 사실상 자리 잡았다”며 “앞으로는 글로벌 시장에 맞춘 기획·생산·유통을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가 기업 간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