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원·달러 환율 연평균이 외환위기 당시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율 흐름이 ‘뉴노멀’로 굳어지면서 올해 역시 1400원대 환율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일 서울 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지난해 원·달러 평균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421.97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평균치(1394.97원)보다도 높다.
연말 종가 역시 상위권을 기록했다. 지난해 마지막 외환시장 거래일인 12월30일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기준 1439원에 마감했다. 전 거래일 대비 9.2원 오른 수준이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1695.0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여파가 반영된 2024년 1472.5원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연말 종가다.
지난해 환율은 ‘V’자 흐름을 보였다. 연초 첫 거래일 1460원대에서 출발한 환율은 4월 들어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른 미·중 관세 전쟁과 국내 정치 불안이 겹치며 종가 기준 연중 최고치인 1484.1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새 정부 출범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미·중 무역 협상 역시 진전을 보이면서 환율은 1300원대 중반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신중론, 한·미 관세 협상 불확실성, 글로벌 AI(인공지능) 버블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서학개미’의 해외 투자 확대, 수출기업의 달러 환전 지연 등 요인도 원화 약세를 키웠다.
고환율 흐름이 이어지자 외환당국은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정부는 해외 주식을 팔고 국내 주식에 1년간 투자할 경우 양도소득세(20%)를 1년간 비과세하는 유인책을 내놨다. 은행의 과도한 달러 보유를 막기 위해 ‘고도화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감독상 조치도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했다. 외국인의 국내 증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편도 추진 중이다.
국민연금은 대규모 환헤지를 통해 환율 방어에 나섰다. 정부도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이 시장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할 ‘뉴 프레임워크’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고강도 개입에 지난달 23일 1483.6원이던 환율은 24일 이후 나흘 동안 44.6원 급락했다.
‘뉴노멀’ 된 1400원대 환율
시장에서는 올해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2026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말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1400원으로 제시했다. 1300원대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연구소는 “미국 달러화 약세,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 등으로 2025년 보다 원화 약세 흐름이 완화될 것”이라면서도 “미국 관세 정책으로 인한 수출 위축과 미국산 에너지 추가 수입에 따른 단가·운송비 상승, 현지 투자 의무 이행 등이 대외수지에 부담으로 작용해 원화 가치 상승 폭은 제약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원·달러 환율이 평균 1424원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클레이스캐피탈은 1490원을 제시하며 1500원에 근접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1395원), 골드만삭스(1390원), 노무라(1380원) 등 일부는 1300원 후반을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올해 원·달러 환율이 상반기까지 하락 안정세를 보이다, 하반기에 다시 오르는 ‘상저하고’ 흐름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상반기 하향 근거로는 △지난 달 24일 이후 정부의 고강도 구두개입 및 각종 수급대책 효과 △4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미국의 금리인하 사이클 등이 꼽힌다.
특히 정부는 WGBI 편입으로 글로벌 자금으로 최소 560억달러(약 75조원)가 국내 국채 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본다. 한국 국채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가 커지면서 외인 자금이 국내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2026년 하반기는 예단할 수 없지만, 상반기 말까지는 1400~1450원 선에서 등락하며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연말 환율이 과하게 오버슈팅된 측면이 있고, 펀더멘털 측면에서 달러 가치가 동아시아 통화들에 비해 가치 절화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 환헤지, 국내복귀계좌(RIA) 세제 정책 등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도 다양하게 시행하면서 수급 쏠림 현상도 크게 완화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반면 외환당국의 환율 안정 대책 효과가 시차를 두고 반영될 것을 감안해, 환율이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국민연금의 ‘뉴 프레임워크’와 정부가 환율 안정 정책의 효과가 시차를 두고 하반기에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의 금리 인하 효과 역시 하반기에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올해 환율은 1350~1490원 범위에서 움직이고, 연간 흐름은 ‘상고하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비교적 견조한 성장세가 이어져 원화 가치 하단을 받쳐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대미투자 증가나 서비스수지 적자 등 구조적 요인은 여전히 부담”이라면서 “중국이 한국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일 경우 서비스수지 완화 가능성은 있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