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학들이 ‘AI 캠퍼스’ 전환을 전면에 내세우며 연구·교육 체계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AI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대학들도 더 이상 기존 학과 체계만으로는 산업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확산된 결과다. 다만 이 전환이 일부 상위권 대학의 경쟁력 강화로만 귀결될 경우, AI 캠퍼스는 혁신이 아니라 또 다른 순위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대학교는 AI 연구에 특화된 대학원인 ‘AI대학원’ 신설을 본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인간형 로봇과 산업용 로봇이 물리적 환경을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이른바 ‘피지컬 AI’ 연구를 전담할 ‘로보틱스연구소’를 내년 2월께 신설할 예정이다. 현재 운영 중인 AI연구원(AIIS), 새로 출범할 로보틱스연구소, AI대학원을 축으로 3대 AI 연구 거점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AI대학원 설립은 학내에서 검토 중인 사안으로 매우 초기 단계”라며 “아직 구체적인 세부 사항이 논의된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도 AI 교육 강화에 나섰다. KAIST는 올해 봄학기 운영을 목표로 AI대학과 산하 4개 학과를 신설하며 AI 중심 연구 체계를 확대했다. KAIST 관계자는 “무학과 학생의 학과 진입, 전과, 복수전공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학생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AI 대학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연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도 지난해 AI 반도체혁신연구소를 잇달아 개소했다. 정부 정책과 산업 수요에 대응해 반도체·AI 융합 연구를 강화하고, 대형 국책 과제와 산학 협력을 동시에 겨냥하는 전략이다. 이처럼 주요 대학 전반에서 AI를 중심으로 한 연구 조직 재편과 대형 연구 거점 구축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글로벌 AI 시장의 급성장과 맞닿아 있다. 스태티스타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AI 시장 규모는 2025년 2550억 달러(약 377조원)에서 2030년 1조2190억 달러(약 1803조원)로 5년 만에 약 4.8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36.7%에 달한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기술 개발과 서비스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면서, 기술 우위를 좌우하는 컴퓨팅 자원과 고급 인재 확보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학들의 AI 캠퍼스 전환 역시 이러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학 간 역할 분담과 제도 설계가 병행되지 않을 경우 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현철 한국인공지능협회장은 “전공·학과 중심의 기존 교육 방식은 AI 확산으로 구조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며 “모든 대학이 같은 방식으로 AI를 추진하기보다는 시장 요구에 따라 대학별 역할과 포지션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상위권 대학의 경우 석·박사 중심의 연구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나머지 대학들은 산업 수요에 맞는 각자의 생존 전략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제한된 AI 인재를 둘러싼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과열 경쟁이 곧 생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AI 기술은 결국 지금의 입시·전공·취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덧붙였다.
정지선 고려사이버대 교수(한국직업능력연구원 명예연구위원)는 산업 수요와 연계된 인재 양성 체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정 교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가 AI 인재 양성에 주력하는 방향은 필요하다”면서 “제도적 안전장치로 산업체 수요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학원·대학·전문대·특성화고 등 각 단계별로 필요한 인재 수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춰 인재 선발과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AI 캠퍼스 전환을 대학 간 과열 경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시선도 있다. 한 국립대 관계자는 “대학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AI 인재를 길러낸다면, 앞으로는 대학 간 경쟁보다 산업과 사회가 그 인재를 먼저 확보하려는 경쟁이 가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들이 AI 캠퍼스를 내세우는 것도 동일한 모델로 경쟁하기보다 각 대학이 지닌 강점을 바탕으로 AI 교육·연구 특징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봐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결국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AI 인재로 배출될 수 있다고 했다.
AI 캠퍼스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는 인식이 대학가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이 경쟁이 일부 상위권 대학의 전략적 도약으로 끝날지, 아니면 한국 고등교육 전반의 구조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지는 앞으로의 제도 설계와 실행에 달려 있다.







